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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15일 수요일 - '남은 자의 자격과 남은 자의 특권' (스바냐)

v.9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
v.10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지니라.
v.1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너로 나의 성소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니라.
v.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희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v.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v.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v.15 여호와가 너희 형벌을 제하였고 너희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희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v.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v.17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Zephaniah) 3장9-17절
 
'남은 자의 자격과 남은 자의 특권'
 
스바냐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숨으시다' 혹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감추시다'는 뜻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 고통이 임할 때, 기도하지만 잠잠하실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가 바로 스바냐라는 이름의 의미입니다.
 
스바냐는 남 유다의 마지막 개혁왕인 요시야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요시야 왕은 BC 640-609년까지 남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8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31년을 다스리면서 놀라운 영적 개혁을 이루었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절기를 지키기 시작했고 성전을 보수했습니다.
이런 모든 개혁의 시작이 바로 스바냐의 메시지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또한 이사야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왕족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후손)
 
스바냐서의 주제는 역사가 아무리 어둡더 해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역사를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을 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어떻게 증거하는가?
1. 선택하신 유다 백성을 징계하심으로 (1장)
2. 주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심으로 (2장)
3. 남은 자를 구원하심으로 (3장)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1-2장은 어두운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3장에 가면 남은 자들로 인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 죄로 인해 심판을 받지만
완전히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남은 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어떤 사람들이 남을 것인가?
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입니다. (3:9)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마음의, 믿음의 고백을 말합니다.
롬 10:13절에서도 사도 바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부활하심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10:9-10)
심판 중에서도 남은 자는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2. 온유와 겸손한 자들입니다. (3:12)
본문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로는 meek and humble 입니다.
이것은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하고 자랑하는 자들은 없애시고,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남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자랑하는 사람도 못 들어갑니다.
오직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만 들어갑니다. (마 11:29)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고 남은 자가 됩니다.
 
3. 거룩한 자들입니다. (3:13)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이것은 레위기 19:1-18절에서 말하는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거룩하신 백성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남겨두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특권을 주십니다.
1. 찬양의 특권을 주십니다. (3:14)
2. 위로와 격려를 주십니다. (3:16-17)
3. 높혀주십니다. (3:18-20)
 
이 가운데 3:17절은 찬양 가사로도 사용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하고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인하여 기뻐하십니다.
우리만 보면 좋으시다는 겁니다.
우리만 보면 기쁘시다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자녀가 예뻐 못사는 부모의 마음 같지 않습니까?
'이뻐 죽겠어'
 
오늘날에도 험난한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겸손히 세상과 구별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구원을 완성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높이사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십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무명한 자처럼 사나,
비록 세상에서는 조롱과 멸시를 당하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고 높이십니다.
이것이 남은 자가 받을 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입니다. (3:20절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금 우리의 삶은 우리의 마지막 평가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진정한 마지막이요 그 때의 평가가 진짜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며 세상을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언젠가는 그것을 분명히 보는 날이 있을 겁니다.
 
그 날을 사모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님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십니다.
 
묵상
때로 하나님께서 정말 함께 하시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지 않는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있음을 믿는가?
비록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죄를 범하면 징계하심을 믿는가?
징계가 전부가 아니라 징계 후에는 다시 사용하시는 분이심을 믿는가?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에 간다고 보는가?
알곡과 쭉정이가 있지 않는가?
사람은 알 수 없지만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아시고 구별하실 터인데 자신은 알곡인가?
자신은 남은 자에 속한다고 자신하는가?
무엇을 근거로 확신하는가?
믿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가?
비록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지만 구원으로 인해 찬송이 있는가?
언젠가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귀한 일에 사용하심을 믿고 묵묵히 믿음의 길을 가는가?
 
오늘 하루, 스바냐서를 묵상하면서, 자신이 남은 자에 들어갈 자격이 되는지 돌아보고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