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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 '주관하시는 하나님'

v.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백 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v.36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라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깐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v.37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로 돌격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사사기 (Judges) 20장35-37절
 
'주관하시는 하나님'
 
오늘 QT 본문은 사사기 20:35-48절 말씀입니다.
35-39절은 베냐민 지파를 속이고 새롭게 전쟁을 시작하는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말씀이고
40-46절은 속은 베냐민 지파를 잔인하게 공격하는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말씀이고
47-48절은 너무 심할 정도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진멸하는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두 번의 공격에 실패했던 이스라엘 11지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응답에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전법으로 싸움에 임했습니다.
그것은 매복과 기만 작전이었습니다.
 
두 번의 싸움에서 용맹과 탁월한 전략으로 승리했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잠시 패해 도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고 또 다시 승리를 확신하며
전과는 달리 성에서 멀리까지 추격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성읍에서 치솟는 큰 연기를 보고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추격자가 아니라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도망했지만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아 성에 들어가 눈에 뜨이는 것은
가축이든, 사람이든 모두 죽였고 불태웠습니다.
 
이 동족간의 싸움으로, 이스라엘 11 지파 사람 40030여 명이 죽었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 25,100여 명이 죽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죽였던, 누가 이겼던, 이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
씁쓸한 이김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주변, 가나안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사사기 저자는 이스라엘 11 지파가 베냐민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고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치셨다고 표현했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자존심 때문에, 손해보지 않으려고 싸움을 했지만
결국 모든 싸움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족속 이스라엘의 전쟁도 주관하시지만
이스라엘과 주변 나라와의 전쟁도 주관하십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지배하는 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도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History is His (God) story!
 
오늘 본문은 교만과 자기 확신의 위험에 대해 교훈을 줍니다.
베냐민 지파는 두 번의 승리로, 현재의 승리로 너무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추격했다가 결국 성을 빼앗기고
기습 공격을 당해 진퇴양난에 빠졌고 대부분의 군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잠 16:18절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잘 하고 있을 때, 잘 되고 있을 때, 더 큰 일을 할 때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하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존경이 아니라 오히려 시기와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오늘 본문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그들은 너무 잔인할 정도로 형제인 베냐민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이 패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내 형제 베냐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일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무자비하게, 온 성읍을 불살랐습니다.
 
그들도 싸움에서 적지 않은 형제들을 잃었습니다.
잃은 것은 잃은 것이지만 그 아픔을 알 것입니다.
그들은 아픔을 기억하고 긍휼을 베풀기보다는 보복하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형제 아닙니까?
동족 아닙니까?
그런데 감정적으로 하면, 원수처럼 대하고, 보복하려고 하면 그 공동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큰 아픔과 상처만 남을 뿐입니다.
 
가정이든, 교회 공동체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서로 다른 것이 많기에 양보하고 사랑과 긍휼과 관용과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투고 갈라지고 상처만 입게 됩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에게 좋은 기회를 주고, 마귀에게 승리를 줄 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대신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기도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형제 지간에 다투고 싸운다면 모르는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공동체는 믿음의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외적으로 내적으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병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은혜로, 긍휼로 감싸야 회복이 되고 치유가 됩니다.
자신의 옛 모습을 잊어버리면, 교만하면 그런 것을 나누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많은 선한 일을 하고, 핍박 속에서도 인내했으며
악한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고, 게으르지도 않았지만,
한 가지 책망하실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만약 그 처음 사랑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네 촛대 즉 교회를 옮기시겠다고, 없애버리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가정이든,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든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자비와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평화가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묵상
가족이든, 믿음의 사람들이든 진실함으로 대하는가?
혹시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가?
확인되지도 않은 이상한 소문을 가지고 마치 진짜인 것처럼 소문내는 것은 없는가?
쉽게 비방하고 수군수군 대는 것은 없는가?
자신이 아무런 잘못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감정적으로 대하지는 않는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용서하고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는가?
혈육과 믿음의 지체들에 대해 어떻게 대하는가?
화목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늘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빚진 자라는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처음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가?
은혜와 사랑을 잊어버렸다면 어떻게 회복하겠는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올려드리는가 아니면 자신이 갚으려고 하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과 긍휼을 알고
성령충만을 받아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긍휼을 베푸어
화목케 하는 peace maker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