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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3년 8월 22일 목요일 - '하나님의 배려'

v.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v.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v.19 유대인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v.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v.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v.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르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사도행전 (Acts) 28장17-22절
 
'하나님의 배려'
 
오늘 QT 본문은 사도행전 28:11-22절 말씀입니다.
11-16절은 바울이 마침내 로마에 도착하게 됨에 대한 말씀이고
17-20절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유대인 리더에게 자신이 죄수로 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말씀이고
21-22절은 바울의 사상을 듣고자 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풍랑으로 배가 파선되어 멜리데 섬에 머문지 3 개월이 지난 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가는 배를 타고 다시 로마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로 향했지만 며칠 만에 바로 로마에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날씨 때문에 또 몇 곳을 거쳐서 기다렸다가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후 바울은 두 가지 대접을 받았습니다.
1. 동족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대접받은 것이고
2. 자신과 함께 배를 타고 고생을 했던 로마 백부장 율리오로부터 감옥이 아닌 곳에서
좀 더 자유스러운 배려를 받은 것입니다.
그는 바울로 인해 죄수들을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임무를 잘 하게 되었기에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도 바울로 인해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을 것입니다.
 
바울이 천신만고 끝에 로마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한 일이 무엇인가?
유대인 기독교 리더들을 만났는가?
아닙니다.
그는 회당을 방문할 수 없었기에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들 앞에서 바울 자신은 유대인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으며
더욱이 자기 동족을 고발하려고 로마 황제에게 고소할 것이 아님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죄인의 몸으로 오게 된 것은 오직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임을 다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유대인 리더들은 두 가지를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1. 바울에 대해 편지나 어떤 소문을 들은 적이 없다.
2. 바울이 바리새인에서 어떻게, 왜 나사렛 예수파로 옮겨가게 되었는지 듣고싶다.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봅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게 믿음으로 인내하며 가야 한다.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로마에 가게 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왔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죽을 뻔한 고비가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천신만고 끝에 로마에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편안히 잘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의 방해가 있기에 반대와 고난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기에 목적을 달성합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치 않고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귀한 만남의 복을 주신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는 거기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습니다.
타국에서 자기 동족을 만나도 기쁜데 거기에 믿음의 사람들까지 만났으니 감격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고 또한 위로도 받았습니다.
 
어디를 가든, 하나님께서 만남의 복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때로 사역을 하며 혼자인 것처럼 느낄 때가 있지만,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님께서 당연히 함께 하시지만 동역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로마에서 편견이 없는 유대인 리더들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가장 큰 방해와 적은 바로 자기 동족 유대인이었습니다.
말도 되지도 않는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소동을 일으키고, 고소하고, 때리고, 가두고.
 
그런데 로마에 와서는 그런 적대적인 동족이 아니라
편견이 없이 바울의 사상에 대해 듣고자 하는 동족을 만났습니다.
이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편견이 왜 생깁니까?
자기 철학이나 주관으로 인해 생길 수 있지만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의 말 때문에 생깁니다.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로 한 쪽 말만 들어도 편견이 생깁니다.
 
누가 그러더라는 말이 참 무섭습니다.
자신과 평소에 좋은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긍정적으로 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소문을 쉽게 받아들이고 좋지 않게 봅니다.
좋지 않게 보는 편견이 자신에서 끝나는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에다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까지 덧붙여서 전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거쳐갈수록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의와 관계 없이, 나쁜 쪽으로만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말은 아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하는 자리에는 가지 않는 것은 물론
들은 말에 대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옮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말로 인해 관계가 어려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말로 인해 심판을 받을 수 있지 않게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수기 14:28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시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12:36-37절)
 
마땅히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대한 말, 참된 말, 감사하는 말, 덕을 세우는 선한 말,
화평케 하는 말, 지혜로운 말, 충성된 말, 깊이 생각하는 신중한 말.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거짓과 아첨의 말, 독한 말로 저주하는 말, 유혹하는 말,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
자기를 자랑하는 말, 남을 해하려는 좋지 않은 말, 시기하는 말, 이간질시키는 말.
 
성경은 말에 대해 많은 경고를 줍니다.
에베소서 4:31절, 디도서 3:1-2절, 야고보서 3:6절, 4:11절, 베드로전서 2:1절, 그리고 잠언.
 
알고는 있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자신을 주님 앞에서 돌아보고 입술에 파숫꾼을 세우고 걸러야 합니다.
 
묵상
'여호와 이레' 예비하신 하나님을 믿는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가?
약속을 받았지만 약속을 이루기까지 적지 않은 고난도 방해도 있음을 아는가?
믿음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약속을 받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한 것은 없는가?
하나님을 의심한 적은 없는가?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신령한 복을 주심을 믿는가?
복음,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복음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만남의 복을 기대하는가? (믿음의 사람, 믿음의 동역자, 믿음의 배우자, 믿음의 교수, 믿음의 상사)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것에 대해 편견은 없는가?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가?
편견이 어디서부터 온다고 여기는가?
복음은 차별이 없는데 사람은 차별하지 않는가?
남의 말을 잘 하는 편은 아닌가?
좋은 말이 많은가 좋지 않는 말이 많은가?
소문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남에 대해, 그것도 좋지 않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
자신의 말 주변은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험담하는 곳에 자주 끼는 것은 아닌가?
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주의하는가?
감사가 있는가?
고난, 반대, 손해, 억울함, 역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겠는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기대와 반대가 되는 경우 주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임을 확신하고
그 길을 가는 동안 어려움도 있지만 여정 중에 귀한 만남도 주시고 복도 주심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믿음의 길을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