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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3월 14일 금요일 - '화목하게 하는 사람'

v.1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v.2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므로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v.3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아버지와 말하다가 무엇을 보면 네게 알려 주리라 하고
v.4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v.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v.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사무엘상 (1 Samuel) 19장1-6절
 
'화목하게 하는 사람'
 
오늘 QT 본문은 사무엘상 19:1-7절 말씀입니다.
1-3절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에 대하여
4-5절은 다윗을 살리기 위해 중재하는 요나단에 대하여
6-7절은 다윗을 죽이지 않기로 맹세하는 사울에 대한 말씀입니다.
 
드디어 사울의 미움과 시기와 질투는 다윗을 죽이는데까지 나아갑니다.
사울은 공식적으로 아들을 포함한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절친이요 딸 미갈의 남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그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여
그가 자신의 왕권을 노리는 자로 여겨 죽이려고 합니다.
 
사울과 다윗 사이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요나단입니다.
한쪽은 아버지고 한쪽은 자신의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입니다.
요나단은 우선 다윗에게 피하라고 한 다음 아버지 사울에게 나가 직언을 합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 세 가지를 설명했습니다.
1. 다윗은 사울에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사울은 다윗을 정적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다윗은 사울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사울은 자기 생각에 빠져서 다윗이 왕권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알려주었습니다.
 
2. 다윗은 왕에게 선한 일을 했다.
다윗은 왕권에 대한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한 모든 일은 선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울이 악령으로 고생할 때 수금을 타서 머리를 맑게 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 중 누구도 싸우려고 하지 않았던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늘 지혜롭게 행하여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는 왕에게와 이스라엘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 사람인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3. 다윗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만약 다윗이 사울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왕으로서 신하를 바로잡는 것이 옳지만
다윗은 전혀 그런 것이 없는데 왕이 죽이려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무죄한 피를 흘리면 거기에 대한 보복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끊임없는 복수가 이어지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이 죄임을 요나단은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사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돌이킨 것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와 친구 사이를 화목케 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1. 사람 사이에 이해관계를 따지면 어려움이 생긴다.
다윗은 왕의 잘못된 의로를 알지 못한체 순수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습니다.
반면 사울은 다윗을 자기의 적으로, 경쟁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커져서 결국 죽이려고까지 하게 됩니다.
 
관계를 순수하게 보지 못하고 이해타산적으로 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날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런 이해타산을 먼저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탐욕, 탐심, 탐식이 생기고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오해가 생깁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불의한 일에 대해 바르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요나단은 비록 아버지요 왕이지만 잘못된 일에 대해 바른 말을 했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잘못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자신에게 중요하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지 않기에 용기를 내어 바른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경우, 불의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많습니다.
자신이 손해볼까봐, 불이익을 당할까봐, 관계가 어려워질까봐 말을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뒤에서는 더 부풀려서 말을 하고 욕을 합니다.
강한 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강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것은 관계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3.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
요나단이 한 일은 오늘날 peace maker와 같은 역할입니다.
노벨상 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있는 것이 바로 노벨 평화상입니다.
불가능한 것 같은 두 사이에 끼어들어 화목케 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인내도 필요하고 시간과 정성을 드려야 가능합니다.
 
중재역할을 함에 있어 요나단은 우선 다윗에 대해 칭찬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무조건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잘한 것을 말해주고
그 다음에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해야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산상팔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중재에 대한 복이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껄끄러워서 바르지 않은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면 나중에는 문제가 더 커집니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까지 가게 됩니다.
그러니 중재하여 더 큰 피해를 막아야 합니다.
 
4. 쉽게 맹세하지 말아야 한다.
요나단의 말을 들은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쳤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평생 지켜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연약한 인간이 그렇게 잘 지킬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키리고 했습니다. (민 30:2)
만약 맹세를 하고도 지키지 않으면 죽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대하 15:12-15)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피조물의 이름으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 5:34-36)
사도 야고보도 맹세를 함부로 하지 말아서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약 5:12)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맹세를 너무나 쉽게 합니까?
그러고도 지키지도 않고.
그러니 죄를 쌓아만 갑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맹세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일을 모면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5. 잘못된 길이라면 돌아서라.
사울은 요나단의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섰습니다.
사울은 비록 아들이 하는 말이지만 옳기에 들었습니다.
그저 권위만 내세우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자신보다 덜 배웠지만 바른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의 기준은 성경 말씀입니다.
세상 기준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말씀을 가까이 하여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이라면 즉각 돌이켜야 합니다.
 
묵상
관계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
늘 이해타산적으로만 보지는 않는가?
상대방을 늘 경쟁자로, 밟고 올라가야 하는 존재로 여기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재로 여기면 관점과 태도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탐심, 탐욕, 탐식, 질투, 시기, 미움은 없는가?
그것이 점점 자라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가?
만약에 있다면 어떻게 억누르는가?
불의한 일을 보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자신이 손해볼 각오를 하고 바른 말을 하는가?
가족이라고, 상사라고, 권력이 있다고, 돈이 있다고, 손해볼까 두려워서 말을 못하는 것은 없는가?
혹시 받은 것이 많아서 미안해서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는가?
그 사람으로 인해 하나됨이 깨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냥 모른 척 하겠는가?
중재역할을 한 적이 있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은 사람인 것을 알고 행하는가?
바른 말, 칭찬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가 더 어렵게 하는 말은 없는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인가?
누구든 바른 말을 할 때 귀담아 듣고 돌이키려고 애쓰는가?
기준이 진리의 말씀이기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가?
시편 119편 한 장 전체가 말씀에 관한 것인데 읽은 적이 있는가?
너무나 쉽게 맹세하는 것은 없는가?
맹세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끝까지 지키고 있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요나단의 결단과 지혜를 본받아
사람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고 다리를 놓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