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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16일 화요일 - '잘 알지 못하는 이름들의 의미'

v.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 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v.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혜미야와 스라야와 그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에스라 (Ezra) 2장1-2절
 
'잘 알지도 못하는 이름들의 의미'
 
오늘 QT 본문은 에스라 2:1-42절 말씀입니다.
1-2절은 페르시아의 초대 왕인 고레스의 칙령으로 다시 유다로 돌아오는 귀환에 대하여
3-35절은 귀환하는 일반 백성들의 명단에 대하여
36-42절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에 대한 말씀입니다.
 
남 유다는 BC 605년부터 시작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BC 587/586년에,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눈이 뽑히고
바벨론으로 끌려감으로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가 되었고
나라도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 후 무려 수 십 년이 지나,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 연합군에 의해 망했습니다.
 
후에 페르시아가 될 연합군의 초대 왕이 바로 고레스입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점령한 후, 바벨론과는 달리 놀라운 발표를 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유다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도 좋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돌아가서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지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의 후손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포기하고 지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국이 바뀌면서 왕이 놀라운 선포를 했으니 귀를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놀랍게도 에스라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1:1절 상)
 
고레스가 그런 칙령을 내린 배경이 놀랍게도 예언의 응답을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감동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신 예언은 무엇인가?
배경은 예레미야 29:10-14절 말씀으로 간단히 말하면
비록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포로로 잡혀가지만
70년이 지나면 다시 회복시켜 주사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예언입니다.
 
첫 번째로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도 바벨론에 있는 동안 예레미야의 책을 읽다가
그 말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단 9장)
그리고 그 70년을 따져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보다 더 먼저 활동했던 이사야 선자지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그리고 이사야 선자자의 때로부터 150년이 훨씬 지났을 때에
바사와 고레스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놀라운 발표를 했습니다.
이 때가 기원전 538/537년 입니다.
 
그리고 그 선포를 들은 사람들 중에 일부가 다시 유다로 귀국하게 됩니다.
그 숫자는 잡혀갈 때와 비교할 때 아주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그 가운데는 유다의 주 지파였던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제자상들, 레위인들, 그리고 하나님이 감동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바벨론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잡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곳을 떠나 고국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가고 싶은 고국은 현실적으로 볼 때 황폐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혔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비해
가야 할 곳은 아무 것는 황폐한 곳이기에 새롭게 시작해야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명단이 길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바로 2장입니다.
 
왜 잘 알지도 못하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그렇게 기록이 되었는가?
족보를 볼 때마다 느끼는 생각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에 기록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의미이고
둘째는 이들을 통해 성전이 다시 건축되었다는 의미이고
셋째는 이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다시 역사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볼 때 '남은 자의 신학'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다수에 의함이 아니라
늘 소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 다윗의 나라는 명맥이 유지가 되었고
그 후손에서 결국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게 됩니다.
그러니 말씀에 순종한 소수의 사람들은 중요한 사람들이기게
지루하지만 기록을 해놓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떠남의 의미.
좋은 기반을 놓고 황폐한 곳으로 가서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떠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타이틀을 얻은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이 된 것은
가장 먼저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아비 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을 보장해 놓고 오라고 하면 쉽게 갑니다.
그러나 아무런 보장도 없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면
좋은 기반을 놓고 떠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떠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머무를 수 있는가?
자신의 가고 섬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인가?
 
2. 이름의 중요성.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이름들을 기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위대하고 유명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더욱이 한 나라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기억될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사람들에게 기억이 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께 기억되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죽음 후의 인생이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70억이 넘는 사람들 중에 우리의 이름이
창조주 하나님께 기억이 된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또한 그 기억이 됨은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었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은, 구원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비록 이 땅에서는 무명하지만 하나님께 기억되는 유명한 자들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들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하나님께 기억된다고 확신합니까?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확신합니까?
무엇을 근거로 그런 확신을 합니까?
누구라도 예수님을 자신의 죄를 사해주신 구세주로 믿으면
그 순간에 구원이 시작되고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름이 기록된 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오늘날 정치인들처럼 헛된 약속을 남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 되실 수가 없습니다.
공의로운 분이 되실 수도 없고 진실하신 분이 되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은 바로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그 분의 때에 이루심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은 바로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오시기 전부터, 태어나시게 된 배경, 태어나신 곳, 자라신 곳,
받으신 고난, 죽으심, 그리고 부활.
모든 것은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였습니다.
그 분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뜻과 약속의 성취였기에
죽으실 때 당당히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실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은 미래의 부분을 제외하고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증명이 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미래의 부분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니엘 11-12장, 마태복음 24장, 바울의 계시록인 데살로니가서, 그리고 요한계시록)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더라도 미래를 알고 싶으면 성경을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때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약속들을 찾아 묵상하면
소망이 생깁니다.
그 소망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인내하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읽고 묵상함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인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뜻이 들어있는데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가?
읽고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잘못된 인생을 살지는 않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름이 하나님께 기억되고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알고 기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말씀 안에 있는 약속들을 읽고 묵상함으로
소망을 가지고 현실을 견디고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