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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2일 화요일 -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v.19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매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시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v.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하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하니라.
v.21 왕과 지방관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v.22 각 지방 각 백성의 문자와 언어로 모든 지방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이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에스더 (Esther) 1장19-22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오늘 QT 본문은 에스러 1:13-22절 말씀입니다.
13-15절은 왕후 와스디로 인해 현자들에게 선례와 법적인 조언을 구하는 왕에 대하여
16-18절은 왕후 와스디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므무간에 대하여
19-22절은 므무간의 의견을 좋게 여기고 조서를 내리는 왕에 대한 말씀입니다.
 
에스더서의 저자는 누군지 모릅니다.
배경은 페르시아 시대의 아하수에로 왕 때입니다.
그는 BC 486-465년 페르시아를 다스렸던 왕으로 다리오 1세의 아들입니다.
 
에스더서를 정경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란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가?
분명히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언급이 되지는 않지만
이 책에는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기에
정경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이 에스더서의 발단은 왕이 베푼 잔치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아버지 다리오 왕 1세가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그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대적인 군사 원정을 계획하면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것도 6개월간 베풀었습니다.
또한 왕이 거하는 수산 궁에서도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잔치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에 왕이 술을 마시고 객기를 부려
미모의 왕비 와스디를 사람들 앞으로 오도록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왕비는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왕이 술을 마시고
그 술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자신을 불렀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왕이 왕비를 인격적으로 사랑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왕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명령이 거절되었기에
왕으로서 권위가 손상되었다고 생각들었기에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현자, 지혜자 7명을 불러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선례가 있는지, 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렇게 불림받은 7명의 현자들 가운데 므무간이
왕후에 대해 좋지 않게 여기고는 왕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왕에 국한 된 문제가 아니라 페르시아 나라 전체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를 그냥 지나가면 나라 안의 모든 아내들이 남편을 우습게 여길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변치 못하는 조서를 내리게 하여
두 가지를 왕이 하실 것을 조언했습니다.
1. 남편이 가정을 주관하도록 하는 것이고
2. 남편 나라의 언어로 통일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페르시아 제국에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결혼한 것이 많음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조서를 내릴 때도 그 나라 말로도 번역을 하도록 하여
누구든 이 조서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했습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지역에 따라 여러 언어가 있었습니다.
엘람어, 바벨로니아어, 아람어, 고대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이집트어 등등.
 
이 말씀 속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문제가 생겼을 경우 어떻게 처리를 하는가?
왕은 화가 나서 지혜자들을 불러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권세 잡은 사람이 아니라, 세상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변호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물어여 합니다.
이것부터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곧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삶의 주관자이심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은 주인이라고 하면서 주인께 먼저 묻지 않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2.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왕은 선례와 법률적인 해석을 요구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의 기준은 바로 그 분이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모든 경우에 대한 답이 들어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들어있습니다.
그 원리의 틀 안에서 우리는 해석을 하고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받은 것에 대해서는 말씀에 비추어 증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삶도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이었고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해서 순종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통, 관행, 여론, 법을 따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3. 무엇으로부터 이 모든 갈등이 시작되었는가?
바로 술입니다.
왕이 사람들을 초청하여 먹고 마시는 가운데 문제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술 자리에 미모의 아내를 오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내의 미모를 자랑하기 위함이지만 그것이 과연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인가?
객기에서, 호승심에서 시작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 취하지 말 것은 경고합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하루 한 두 잔의 와인이 건강에 좋다고 말합니다.
꼭 와인이어야만 하는가?
그 외에 다른 좋은 것은 없는가?
술이 들어가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심지어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죽기도 합니다.
술을 금함이 좋습니다.
 
4. 권위에 순종하는가?
왕비는 술을 마시다가 부름을 받은 것을 좋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을 불순종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왕비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온 나라 전체의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위에 있는 권세에 순종하라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하는 것이라면 듣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따라야 하는 것이 맞다고 여깁니다.
 
5.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이 일로 인해 왕비는 자신의 지위가 박탈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새로운 왕비가 세워지게 될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유대인의 후손 가운데 에스더가 왕비가 됩니다.
이 왕비 에스더로 인해 유대인들이 모함 가운데 살아남게 되고
그 결과 부림절이라는 절기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책에 하나님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들이 있었기에
정경 66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고속도로를 가다가 보면, 그 시간이 막힐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체될 때가 있습니다.
천천히 지나가다가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되지만
뒤에 있을 동안에는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 때로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why'라고 묻지만 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왜 그랬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 때가 되어서야 모든 조각들이 맞추어지는 퍼즐처럼 알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의심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라고 하면 하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고 인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의지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에게 생긴 문제의 발단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지금 당장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언젠가 하나님의 때에 이 문제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신령한 복을 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는 인내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