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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3년 9월 4일 수요일 - '자기 기준대로 사는 사람들의 결말'

v.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v.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v.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v.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v.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의 말씀 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v.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v.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사사기 (Judges) 2장11-17절
 
'자기 기준대로 사는 사람들의 결말'
 
오늘 QT 본문은 사사기 2:11-23절 말씀입니다.
11-15절은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말씀이고
16-18절은 그렇게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말씀이고
19-23절은 이방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그들이 주변 사람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제단을 허물지 않은 결과가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 악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들에게 절하며 섬기는 겁니다.
 
그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은 그들이 자기 기준대로 행했다는 겁니다.
자기 기준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사사기의 주제입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였더라' (17:6, 21:25)
 
그들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이방신들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을 쫓아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다른 여인을,
한 여자가 자기 남편과 다른 남자를 사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간음이기에 음행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변 나라들을 통해 그들을 공격하게 하고 압제하게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재앙을 맞았습니다.
 
계속되는 재앙으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괴로움으로 슬피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다고 고백하고 돌이키는 회개가 아닙니다.
그저 고통스러워서 신음하는 겁니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그렇게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재앙으로 인해 신음하시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사사를 세우고 그들을 재앙에서 건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빠진 그들은 사사들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사사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러더니 사사들이 죽자
그들은 더욱 타락하여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더 큰 범죄로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죄에서 돌이켰다면 그렇게 빨리 죄로 돌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함에는 더디면서
세상 재미와 우상에 빠질 때는 빨리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더디면서 죄악으로 향하는 발은 빨랐습니다.
순종은 더디면서 불순종은 빨랐습니다.
이것이 죄의 본성입니다.
 
좋은 습관은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됩니다.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오랜 노력을 들였지만 한 번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거룩은 오래걸리지만 타락은 순간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더디고 쉽지 않지만 악을 행하는 것은 금방 쉽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데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 죄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니 받을 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심판입니다.
그나마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어 사사를 통해 구원을 받았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벌써 망했을 겁니다.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심을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자기 좋은 대로 악/죄를 범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는 전지하신 분임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자기 혼자 있을 때,
혹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면
죄로 빨리 달려갑니다.
그러면서도 아닌 척 하는 위선적인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이 계속해서 꼬인다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계속 범하고도 돌이키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 기준이 아니라 자기 기준대로 멋대로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묵상
삶의 기준이 누구인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자신인가?
무엇을 빨리 따라가는가? 하나님 말씀인가 아니면 세상 풍조/유행인가?
자기 기준으로 하면서 하나님께 잘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사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기준이 진리인 성경 말씀과 부합하는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상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가능한가?
죄에 익숙하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음을 스스로 아는가?
눈에 보이는 영적 리더의 말에 잘 순종하는가?
눈에 보이는 리더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따라간다고 보는가?
고난이 왔을 때 가장 먼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긍휼을 인정하는가?
사도 바울과 같이 교만함을 경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가시가 있는가?
육체에 주신 가시로 인해 오히려 감사함이 있는가? 감사할 수 있겠는가?
고난이나 재앙을 만났을 때 진정으로 회개함이 있는가?
마지막 때가 되면 배도/배교가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일이 꼬이는 것과 일이 너무 잘 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더 경계해야 한다고 보는가?
허물어야 할 우상의 제단은 없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진정한 사사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았음을 알고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 때 세상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
거룩함을 회복하고 신령한 복을 누리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