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오늘의 양식

2014년 4월 8일 화요일 - '경계해야 할 공로주의'

v.21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v.22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v.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겼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v.24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나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하라 하고

v.25 그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사무엘상 (1 Samuel) 3021-25

 

경계해야 할 공로주의

 

오늘 QT 본문은 사무엘상 30:21-31절 말씀입니다.

21-22절은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악한 자들에 대하여

23-25절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깃을 나누어야 한다는 다윗에 대하여

26-31절은 자신의 전리품을 말한 대로 나누는 다윗에 대한 말씀입니다.

 

다윗은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가족이 살고 있었던 시글락이

아멜렉 사람들에 의해 모조리 잡혀간 사실을 알았을 때 통곡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따랐던 사람들이 너무 분노하여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 위기의 때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쳐서 크게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빼앗겼던 사람들과 재산 모두를 되찾았습니다.

아울러 그들이 남긴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가져왔습니다.

 

승리하고 많은 전리품도 가져왔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그런 기쁨의 순간에 또 다른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그것은 그와 함께 전쟁에 나갔던 사람들 중에 좋지 않은 사람들이

전리품을 나눔에 있어서 남아있던 자들은 주지 말자고 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과 편안히 있은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를 받는 것은 부당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말에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동등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자신들의 공로가 아니라

바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따라가서 싸운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장된 승리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적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들의 공로로 착각하고 자기들만 이익을 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보상주의, 공로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세상이나 정치판과 같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더 큰 실적을 올렸는가에 따라

누가 더 큰 이익을 남겼는가에 따라

누가 더 큰 업적을 남겼는가에 따라 보상이 다릅니다.

또한 선거가 끝나고 나면 누가 일등공신인가를 따지고

거기에 대해 보상을 고려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보복할 생각을 합니다.

 

세상은 그렇지만 믿음의 공동체는 달라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교만한 행동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과 밖에서 이런 공로주의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부자교회와 가난한 교회가 구별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헌금을 좀 더 많이 하거나, 좀 더 봉사를 하거나,

좀 더 세상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치켜세우고 직분도 줍니다.

그들이 잘못해도 말도 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직분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합니다.

바른 말을 하면 핀잔을 주고 잘난 척 한다고 오히려 비난합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잊어버리니 말끝마다 자기를 높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말을 보면 내가 내가 내가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른 손이 한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부자나 권세자나 세상적으로 유명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소외받는 사람들을 마음에 두셨고 두둔하셨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기득권자들과는 점점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진리임을 알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공로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차별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높이는 교만함을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무엇인가 조금 하면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무시하는 것도 버려야 합니다.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편을 만들고 다수로 밀어부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진리이신 하나님과 그 분이 주신 말씀에 따라가야 합니다.

결코 진리가 외면되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약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 아픈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돌봐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을 당하면 가장 먼저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전쟁과 같은 위기도 있지만 승리한 후 재물과 공로주의에 대한 위기도 있습니다.

2천 년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는 진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오히려 믿음이 자랐고 교회도 성장했지만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편해지니까 교회는 부패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귀도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핍박을 주고 고난을 주니까 사람들이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뭉치기에

이제는 그것 대신 풍요함을 줍니다.

닥달하지 않고 미루게 합니다.

그랬더니 스스로 분열하더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물질적인 풍요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넉넉해짐으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다면 그것은 마귀가 주는 시험입니다.

 

묵상

교회에서 차별주의나 공로주의가 있다고 보는가?

어떤 사람들이 주목을 받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영적으로 본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가?

늘 자기를 자랑하고 차별하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는가?

돈이 있거나, 세상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거나, 큰소리 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가?

자신은 열심히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는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런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시고 기다리고 계심을 아는가?

그런 마음이 바로 은혜를 입은 마음임을 아는가?

하나님이 두려운가 사람이 두려운가?

교회 안에서 가장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수가 틀렸을 때 당당히 진리를 말하고 지키겠는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진리를 행하는 사람인가?

물질적인 위기보다 영적인 위기가 더 심각함을 인식하고 있는가?

물질이나 인기나 칭찬에 집착하는 것은 없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나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람 중심으로, 공로주의로 치우치지 않는지 돌아보고

깊어가는 사순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고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