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7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v.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v.19 그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v.20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v.21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
사무엘상 (1 Samuel) 17장17-21절
'싹수가 있는 집안'
오늘 QT 본문은 사무엘상 17:12-27절 말씀입니다.
12-16절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직면하고 있을 때 양을 치고 있는 다윗에 대하여
17-23절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전쟁터에 있는 형들에게 보냄을 받은 다윗에 대하여
24-27절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담대한 다윗에 대한 말씀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엘라 골짜기에 대치한지 벌써 40일이 되었습니다.
골리앗은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모습을 보이며 이스라엘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 싸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이새는 다윗을 그 곳으로 보냅니다.
왜냐하면 8명의 아들들 중에 세 명을 싸우는 곳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먹을 것을 아들들과 그리고 천부장에게 보내면서
다윗에게 형들의 안부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전과 같이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제일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집안을 돕고 있었습니다.
왜 3명만 싸우려고 나갔는가?
나머지 5명은 만 20세가 되지 않아서 못 나갔는가?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나이가 되었고 나머지는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장성한 세 아들 즉 큰 세 아들만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4명의 아들들은 이름도 나오지 않고 무엇을 하는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필요하면 기브온 왕궁에 가서 수금을 탔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서 양을 쳤습니다.
아들을 싸움터에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편하겠는가?
안부가 걱정이 되어 먹을 것을 보내고 안부를 알기 원해서 다윗을 보냈습니다.
다윗이 갔을 때 마침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누구도 그와 싸우려고 하지 않았고
사기는 떨어져서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나라가 위기에 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지도 않고
대신 골리앗을 이기는 사람에게는 많은 재물과 함께 자기 딸을 주겠다는 공약만 전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다윗은 비록 아버지의 명령이지만 전쟁터에 나갔고
골리앗의 말을 듣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로운 분노가 생겼습니다.
나라의 위기에 부모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전쟁터에서 자녀가 죽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새를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걱정이 되어 먹을 양식을 보냈습니다.
오늘날 부모들은 나라가 위기 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방의 의무를 버리고 자녀를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자녀를 환자로 둔갑시키고 빠져 나갈 다른 방법도 씁니다.
그런 집안에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나오겠으며
그런 집안이 대를 내려갈수록 믿음의 가문으로 부흥하겠습니까?
과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전쟁에 있었을 때
6백 만 명과 무려 2억이 넘는 사람들 사이의 전쟁이었지만
단 6일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때 전 세계에 흩어져 있었던 유대인들은 조국의 전쟁 소식을 듣고
본국으로 속속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 있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전쟁이 끝난 후 죽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는 대부분 장교들이 죽은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에서는 대부분 사병들이 죽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장교들은 앞장서서 나간 반면
팔레스타인 장교들은 부하들을 앞으로 내보내고 장교들은 뒤로 빠졌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 그 전쟁은 이미 결판이 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나라를 위하여 자식을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라가 없으면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없는 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 나라가 먼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선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자기 일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는 둘째도 아니고 늘 제일 마지막입니다.
자신의 조국을 위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릴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골리앗으로 인해 겁을 먹었지만
어린 다윗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담대했습니다.
그는 자기 양들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먼길을 갔습니다.
이 아버지 이새와 다윗으로 인해 그 가문은 세세에 기억되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잘못된 사랑은 자녀를 망치게 하고 가문을 몰락하게 합니다.
군대에 보내는 것이 전쟁터로 내보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부모.
좋은 대학교에 가라고 주일 예배도 지키지 못하고 학원이나 도서관으로 보내는 부모.
그런 부모 밑에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믿음의 일꾼이 나오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을 기뻐하시고 신령한 복을 주시겠는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부모에게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큰 일을 맡기십니다.
당시 양치는 일은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이었습니다.
다윗은 막내였지만 어려서부터 그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막내라고 귀여워만 하지 않고 할 일을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들의 상관들까지도 배려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하나님께서 왜 이새의 가문을 택하셨고
그 중에 다윗을 택하셨는지 조금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묵상
작은 일에도 불평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일을 하는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세상의 부름에 대해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세상에서 출세를 위해 자신의 스팩을 넓히려고 애쓰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어떤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내보일 스팩이 있는가?
나라가 위기에 쳐할 때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내 일을 뒤로하고 돌아가겠는가?
군대 가는 것이 두려운가?
눈에 보이는 환경으로 인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어떤 상황이 우연이라고 보고 흘려버리는 것은 없는가?
보상을 바라고 일을 하지는 않는가?
믿음의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부모로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자녀를 믿음의 일꾼으로 키울 수 있겠는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큰 일을 맡기심을 알고 있는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뒤로 빠지는가 아니면 부족해도 참여하는가?
함께 함이 힘이 되고 사기를 북돋우는 것임을 알고 참여하는가?
리더라면 힘든 때에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부모로서, 자녀로서,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나라와 하나님 나라와 믿음과 믿음의 가문에 대해 생각하고
위기의 때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자신을 드림으로
믿음의 가문을 일으키고 신령한 복을 누리는 참성도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