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오늘의 양식

2013년 5월 2일 목요일 - '죄인을 구원하시고 직분을 주신 까닭'

v.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v.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v.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v.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v.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v.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나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디모데전서 (1 Timothy) 1장12-17절
 
'죄인을 구원하시고 직분을 주신 까닭'
 
오늘 QT 본문 말씀은 디모데전서 1:12-20절 말씀입니다.
 
12-14절은 바울에게 긍휼로 주어진 구원의 복음에 대한 말씀이고
15-17절은 바울을 구원하시고 직분을 주신 까닭에 대한 말씀이고
18-20절은 복음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죄인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자가 필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요, 기다렸던 구세주가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물론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들였습니다.
심지어 스데반과 같은 사람을 돌로 쳐 죽이는데 가장 앞장을 섰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과거의 자신을 '죄인 중에 가장 악한 죄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믿지 아니할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모르고 할 때였기에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고 지은 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렇지만 알고 지었더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사함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에 따라 사함은 받지만 대가를 치를 수는 있습니다.
 
다윗도 간음과 살인에 대해 회개했지만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모세도 잘못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한 번의 실수를 그냥 지나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부름받은 리더였기 때문입니다.
리더에 대해 하나님께서 단호하신 이유는 그들이 미칠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더에 대해서는 무서우리 만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엄하게 하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선행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서 자비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그런 죄인 중의 죄인을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직분도 주셨습니다.
왜 직분을 주셨는가?
충성되어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믿어주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직분이라는 단어는 '디아코니아'인데 이 단어에서 집사라는 deacon이 나왔습니다.
결국 직분이나 집사는 섬기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죄인에서 용서받은 죄인이 되었고 더 나아가 사도라는 섬기는 직분도 받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고 직분을 주셨는가?
첫째, 나중에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는 사람들의 본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바울과 같이 믿기 전에 그렇게 악한 사람도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고 도전과 위로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도 용서받고 쓰임받을 수 있다면 누구도 용서받고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잘못을 하여 감옥에 간 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섬기는 자로 바뀐 사람들이 자주 있음을 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가 허물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그 분둘이 가문도 좋고, 학벌도 좋고, 언행에도 허물이 없었더라면
우리 같이 허물이 많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가문도 좋지 않은 사람은 낙심이 됩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오히려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믿음을 지키면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함입니다.
직분을 맡은 사람이 충성되이 섬기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이 욕먹습니다.
교회도 욕을 먹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막힙니다.
 
오늘날 교회가 욕을 먹는 것은 직분이 없는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직분을 가진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들이 크고 작은 일에 바르게 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죽 했으면 '모든 비리의 몸통은 교회다'라고까지 했겠습니까!
 
직분은 섬기라고 주신 것이지 결코 자랑하라고, 다스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섬김의 직분이 교회의 돈벌이가 되었습니다.
명예가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어도, 세상에 자랑을 하기 위해 세상적인 위치로 직분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랑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교회가 파벌이 생기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덕이 안 되고, 본이 안 됩니다.
많은 젊은이들과 믿음의 사람들이 실망하고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섬기는 직분인데, 그것을 감투로 생각하고 서로 하려고 합니다.
세상 정치처럼 돈으로 로비도 합니다.
정작 해야 하는 기도와 말씀 생활 그리고 빛과 소금의 삶은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한 것을 자랑합니다.
그리스도는 간 곳이 없고 자신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아닙니다.
 
선출이 되지 않거나 피택이 되지 않으면 교회를 흔듭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더 겸손해지지 않고 언성을 높이고 별별 소리를 다합니다.
교회를 떠나겠다고 협박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교회의 거룩함을 깨뜨리고 하나됨도 깨뜨립니다.
그런 사람은 마땅히 직분자로 세워서는 안 됩니다.
 
직분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은 되고 나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직분을 받기 전 까지는 열심히 겸손하게 섬기다가 받고 나면 180도로 달라집니다.
교만해집니다.
물질생활도, 기도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중기도나 대표기도도 제대로 못합니다.
그런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도전과 감동이 되겠습니까?
 
묵상
예수님을 믿기 전과 믿은 후에 달라진 삶이 있는가?
뻔히 않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은밀히 짓는 죄는 없는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용서받은 것도 아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기에 감사함이 있는가?
그 은혜와 긍휼을 갚아가는 삶인가?
그런 은혜와 긍휼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가?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작은 티끌을 비판하지 않는가?
직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자신이 직분을 받았다면 감사함으로 충성되이 섬기는가?
직분을 받기 전과 받은 후의 섬김이 같은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덕이 되 본이 되는가?
섬기기 싫어서, 희생하기 싫어서 직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자신을 믿고 직분을 주시겠는가?
기본적으로 영적인 삶, 물질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는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요 긍휼임을 알고
은혜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긍휼을 베풀로 섬기는 믿음의 일꾼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