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v.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v.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v.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v.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v.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v.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 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v.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v.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결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v.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1 Timothy) 2장1-10절
'교회 안에서의 아름다운 모습'
오늘 QT 본문은 디모데전서 2:1-15절
말씀입니다.
1-4절까지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고
5-7절까지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고
8-15절까지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자와 여자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디모데가 사역을 하고 있던 에베소는 교통과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곳이었지만
동시에 우상숭배가 많았던, 영적으로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도 있었고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곳에 있는 교회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부딪히는 것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이 바른 남녀의 삶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다.
바울 사도는 외적인 여러 핍박과 유혹에 대해 기도하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네 가지를 언급합니다.
간구, 기도, 도고, 그리고
감사.
간구는 결핍과 부족함을 채움받기 위한 간청입니다.
기도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하나님께 대한 부르짖음을
의미합니다.
도고는 기도 가운데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의미합니다.
감사는 말 그대로 감사에 대한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여전히 자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도는 아닙니까?
내 학업, 내 직장, 내 건강, 내 출세, 내 승진, 내 가족, 내 사업
등등.
내라는 말을 잘 사용하는 부류는 애들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아직도 자신의 기도에 '내'가 중심이라면 애와 같은 신앙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좀 성숙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나아가 나라와 리더들을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대통령이나 정치가들을 향해 욕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국민이 뽑은 리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신앙생활도 고요한 가운데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교회의 리더로 부름받았다면,
섬기는 자라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저 필요할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늘 기도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은 교회의 가장 근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요 자기 직무를 다하고 있지 않는
겁니다.
둘째,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몇 가지 변하지 않는 진리를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 분이신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인간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모든 죄를 대신하여 갚으신 대속물이시다.
대속이라는 의미는 (ransom, redeem) 말 그대로 대신 갚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예를 돈을 주고 사서 자유함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전에는 죄의 노예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여 죄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가 아니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죄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저 세상적인 의미에서의 복을 전하거나, 사람들에게 유익한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셋째, 교회 안에서는 거룩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말과 행동을 단정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거룩해야 할 교회가 다투는 곳이
되었습니다.
사교장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남자가 분노와 다툼을 버리고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손은 깨끗한 손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손입니다.
이사야
1: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여자들은 그저 외적으로 비싼 것으로 치장하지 말고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그럴듯한데 경박한 말, 덕이 되지 않는 말, 쌍스러운 말을 하면
되겠습니까?
예절도 없이 자기 멋대로 함부로 하는 행동이 보기에도 좋겠습니까?
남을 가르칠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행부터 돌아보아야 합니다.
외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을 해야 합니다.
묵상
기도하는가?
무엇을 기도하는가?
기도에 감사와 다른 사람과 나라가 들어가는가?
교회를 섬기는 사람으로 교회와 영적 리더를 위해 기도함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하나님께 갈 길이 없음을 아는가?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유일한 길임을 믿는가?
교회에서, 믿음의 사람들의 만남 속에 그 예수 그리스도를 나눔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하는가?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가?
자신은 peace maker인가 아니면 trouble maker인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덕이 된다고 보는가 아니면 걸림돌이 된다고
보는가?
말을 너무 함부로, 거칠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은혜와 칭찬과 덮어주는 말인가?
교회 안에서 시기 질투로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닌가?
외적인 모습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애쓰고 노력함이 있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교회를 어떤 곳으로 여기는지,
교회에서 자신의 삶이 어떤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기도함과 거룩함이 있는지 돌아보고
몸된 교회를 위해, 지체를 위해, 나라를 위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함과 동시에
내면을 말씀으로 은혜로 가득 채우고 변화하는 순종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