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v.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v.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게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v.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v.19 요셉에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v.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v.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Genesis) 50장15-21절
'하나님의 사람의 빼놓을 수 없는 덕목'
오늘 QT 본문은 창세기 제일 마지막 부분인
50:15-26절 말씀입니다.
15-18절은 용서를 구하는 요셉의 형제들에 대한 말씀이고
19-21절은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요셉에 대한 말씀이고
22-26절은 요셉의 유언과 죽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야곱이 130세에 죽었다고 여겼던 아들 요셉을 만나 애굽에서 17년을
지내다가
147세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아버지께 맹세한 대로 그의 시신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장사했습니다.
창세기 마지막 말씀은 야곱이 죽은 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은 다음, 요셉이 과거이 일로 보복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보내 야곱이 자신들을 용서하라고 했다는 말을
전합니다.
과연 야곱이 그런 말을
했을까?
만약 했다면 왜 야곱이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야곱이 했다는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릴 때가 17살이었습니다.
13년이 지난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7년 풍년이 지나고 흉년이 왔을 때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2년 흉년이 지나고 아버지 야곱과 그의 모든 가족들이 애굽으로 내려와 고센에
정착했습니다.
그 때 야곱의 나이가 130세였습니다.
그 후 17년을 요셉과 함께 지내다가 147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때 요셉의 나이가 110세였습니다.
그렇다면 형들이 요셉을 찾아와 이야기 한 과거는 그 시점부터 93년
전입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팔아버렸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용서했다고 했지만 그들은 야곱이 죽은 후 보복당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없는 말을 꾸몄고 심지어 찾아와서 자신들이 요셉의 종이라고 하며
엎드렸습니다.
이것은 또 다시 요셉이 꾸었던 꿈이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그런 형들에 요셉이 어떤 반응을 했는가?
첫째, 요셉이
울었습니다.
그것은 감정이 교차된 울음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었다는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형들의 비굴함과 비겁함에 대한 씁쓸함.
그리고 아직까지 형제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음에 대한 슬픔.
둘째,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이 보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악을 행했고 그 악에 대한 대가는 하나님께서 하시지 자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이 자신이 보복하고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요
동시에 자신의 신앙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신대 미워하고 보복하려고 하는 순간부터는
마음에 평안도 없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계속 생각나기에 그 미워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은 미워하지 말고, 보복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용서가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처럼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예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고 더 나아가 그를 위해 기도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했습니다.
형들의 잘못은 요셉을 팔아버린 것이지만
또 한 가지 잘못은 요셉을 만난 후에 용서를 구하지
않은 겁니다.
비록 요셉이 용서했다고 했지만 형들은 요셉에게 정식으로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죄책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두려워할 만한 악을 행하면 안 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죄책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는 회개를, 당사자에게는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으로 인해 마귀에게 기회를 주어 신앙이 제대로 되지
못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작은 허물이나 실수는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떠들고
미워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에 대해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며 존경하고 신뢰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큰 죄를 용서받았으면서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죄를 범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입니다.
셋째, 요셉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말했습니다.
악을 행한 것은 형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시고 많은 생명을
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이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비록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불평과 불만과 원망과 미움이 아니라 이런 기도를 드리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제게 무슨 복을 주시려고
잠시 시련을 주십니까?'
요셉은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과 그들 자녀들의 모든 쓸
것을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돈을 사랑하고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아
형제지간에도 유산 때문에 싸우는 이 때에 요셉의
행동은 본이 됩니다.
좀 더 가진 자로 형제들의 모든 필요를 책임지겠다는 것은 믿음의 본이 되는
삶입니다.
그러면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곳을 나가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실
것이기에
그 때 자신의 뼈를 반드시 가져가 달라는 겁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용서받은 형제들, 모든 필요를 공급받은 형제들은
요셉의 유언을 기억하고
계속하여 자손들에게 그 유언과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몇 백년이 지난 후, 모세의 때까지 그 유언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출애굽할 때 요셉의 뼈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약속의 땅에, 선조들의 묘에
안치했습니다.
요셉은 17세에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와서 93년이
지나도록 살았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에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품고
살았습니다.
애굽이 본향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본향인 가나안을 바라고 나그네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묵상
자신이 아직도 미워하는 사람은 없는가?
억울해서 그런가 아니면 소문을 듣고 그런가 아니면 이유도 없이
미워하는가?
용서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찔림이 없었는가?
자신의 그 크고 많은 죄가 공짜로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한 적이 있는가?
자신은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 대해 용서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
상대방이 와서 용서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에 쌓아두고 있는 것은
없는가?
그러면서도 자신의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기를 원하지는 않는가?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 회개했는가?
아니면 그저 죄책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가?
본향인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가?
본향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가?
하나님 보다 앞서려고 하는 것은 없는가?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은 없는가?
오늘 하루, 창세기 마지막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얻었음을
기억하고
은혜에 대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용서하고 화해하는 peace
maker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알림>
금년 교회 목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질화하는 해' 입니다.
'오늘 QT 하셨습니까?'
개인의 삶에, 그리고 어떤 모임이든 그날의 QT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매달 마지막 주간에는 목장 모임으로 모여 QT를
나눕니다.
화요 캠퍼스
모임은 개학 때까지 방학합니다.
수요일 7시에는 리더 모임이 있습니다.
금요일에는
U of U 졸업식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참여하여 축하해 주면
좋겠습니다.
(구승아, 김우철, 박태준, 황지은)
졸업으로 인해 금요찬양예배는 없습니다.
토요일 7시에는 아침기도회가 있습니다.
5월 첫째 주에 있을 새로운 일꾼을 선출하는
임시총회를 기도로 준비합니다.
이번 주 암송구절은 요한복음 14:27절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John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