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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3년 4월 18일 목요일 -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의 삶'

v.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v.17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v.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v.19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v.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창세기 (Genesis) 45장16-20절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의 삶'
 
오늘 QT 본문 말씀은 창세기 45:16-28절 말씀입니다.
 
16-20절은 요셉의 가족에 대한 바로의 배려에 대한 말씀이고
21-24절은 바로가 준 예물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형제들에 대한 말씀이고
25-28절은 형들을 통해 요셉의 소식을 들은 야곱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셉이 유다의 진심어리고 간절한 호소로 인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펑펑 울었기에
그 모든 소식이 바로에게까지 들렸습니다.
지금 온 사람들이 요셉의 형제라는 것이 밝혀지자 바로와 그의 신하들도 함께 기뻐했습니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들 모든 가족을 애굽으로 내려오도록 합니다.
많은 곡식과 예물을 주고 특별히 나이가 많은 아버지 야곱을 위해서는 귀한 수레까지 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려오면 가장 좋은 땅에, 가장 좋은 것들을 줄터니
내려 올 때 무엇을 가지고 올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런 바로의 초청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초청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온 가족이 함께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면 이것만큼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천국에 갈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1. 나누는 삶입니다.
바로는 많은 것을 가졌기에 양식이나 예물을 주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이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까?
부자들이 더 인색하고, 부자들이 더 욕심이 많아 부자들이 욕을 먹습니다.
많이 가졌다고 해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에 대한 생각이 달라야, 진정으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달라집니다.
오히려 나누는 사람들은 넉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체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자에게 즉 작은 자, 약한 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결단코 잊지 않으시고 상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때를 기억하고 나누는 사람입니다.
 
2. 버릴 것은 버리는 삶입니다.
바로는 야곱 일행이 내려올 때 무엇을 가지고 갈지 고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에 좋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땅은 물론이요 좋은 것은 다 줄터이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가나안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니 아끼는 것들도 있겠고 귀한 것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가지고 가야 할 공간은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가 가지고 가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해야 만 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런 것으로 인해 고민하지 말라는 겁니다.
 
천국에 가면 어떨까요?
천국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거기는 세상에서와 같은 것들은 없을 겁니다.
썩어서 없어질 것이 없습니다.
거기는 영원한 것들만 있습니다.
귀한 옷, 귀한 차, 귀한 집, 귀한 주방용품, 귀한 가구
거기에 있을까요?
그런 것들이 필요할까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로 고민할까요?
오늘은 무엇을 할까,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로 고민할까요?
아닐 겁니다.
 
천국에 갈 때는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가지고 가지도 못합니다.
이 땅에서의 그 어떤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산다고 하면서 얼마나 땅에 있는 것에 집착하는지요?
영원히 살 것처럼 비싼 집에, 여러 가지 비싼 것을 채우고, 바꾸고
 
집이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노력하여 집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우상이 되면, 탐심의 시작이 되면 잘못입니다.
오히려 가야 할 천국에 재물을 쌓아야 합니다.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지만 미리 천국에 보낼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섬김, 구제, 나눔, 선행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썪지 않는 성령의 열매들, 아름다운 성품들은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가지고 가지도 못할 것, 자신도 쓰지 않는 것들도 아까워서 쌓아놓는 것이라면
결코 천국에 소망을 가진 사람의 삶이 아닙니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꾸어쓰고, 다시쓰고. (아나바다 운동)
이런 것이 진정으로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의 삶입니다.
 
3.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삶입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그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그만큼 요셉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하들도 기뻐한 것은 그가 그만큼 좋은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 사람에게 그만한 지위와 호의를 베푸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은 이 땅에서 그렇게 빛과 소금의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사람에 대해 이렇게 분류를 하기도 합니다.
없어도 될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이 땅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안 믿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비리에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끼어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인색하고, 더 거짓말을 잘하고, 더 위선적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으로 구원을 얻었고 천국에 간다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의 삶에서 그런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묵상
천국이 있음을 믿는가?
천국에 대한 말씀을 통해 천국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천국에 대해서도 지극히 세속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삶이 천국의 삶이라면 이 땅에서 자신의 모습은 어떤가?
언제라도 부르시면 선뜻, 미련없이 갈 수 있겠는가?
무엇으로 고민하는가?
무엇에 집착하는가?
그것이 영원한 것들인가 아니면 썪어서 없어질 것들인가?
나눔의 삶이 있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삶으로 보여주는가?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가?
혹시 배 아파 하는 것은 아닌가?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지는 않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진정으로 천국에 소망이 있다면 과연 지금의 삶은
천국에 초점이 맞추어져 영원하지 않은 것들은 버리고 영원한 것들은 사모하며 사는 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하며 사는지 돌아보고
마음과 시선을 천국으로 향하고 자신의 삶도 조정하는 믿음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