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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3년 4월 17일 수요일 -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

v.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나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v.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v.5 당신들의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v.6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v.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v.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하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v.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v.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v.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창세기 (Genesis) 45장3-11절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
 
오늘 QT 본문은 창세기 45:1-15절 말씀입니다.
 
1-4절은 형제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요셉에 대한 말씀이고
5-8절은 형제들을 안심시키는 요셉에 대한 말씀이고
9-13절은 부모와 형제들 모두를 애굽으로 초청하는 요셉에 대한 말씀이고
14-15절은 형제들과 화해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감동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22년만에 만난 형제들이 드디어 화해하는 장면입니다.
17세에 요셉이 애굽에 팔렸고 30세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7년 풍년이 지났고 다시 2년 흉년이 지났으니 그들이 헤어진지 22년 만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형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면서 자신을 밝힌 것은
바로 유다의 간절함과 진실함 그리고 형들의 변화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아버지의 편애를 싫어했던 형들이 편애를 받고 있는 동생 베냐민에게도
하지 않았을까 두려워서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이제는 그 형들이 과거와는 달리 그 동생을 위해,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습니다.
 
형들은 처음에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결정적인 말이 그들로 하여금 요셉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은 아버지도 모르고 베냐민도 모르는 오직 그들과 요셉만이 아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 앞에서 형들은 그가 살아있다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가 높은 사람이 되었으니 보복하면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안심하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임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앞서가신 하나님.
예비하신 하나님.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생은 신앙의 해석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신앙 안에서 해석을 한다는 말입니다.
알 수 없지만, 억울하지만, 그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이기에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많은 경우 낙심하고 절망하며 분노와 불평 가운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빨리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합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이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입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통역관을 세웠기에 말을 잘못 전달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기에
일구이언을 하지 않고 말에 책임을 진다는 말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
앞뒤가 안 맞는 말.
항상 자신에게는 유리하게 그리고 상대방은 불리하게 하는 말.
쉽게 약속을 하고 지키지도 않는 말.
이런 말들이 서로의 신뢰를 깨뜨립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은 빨리 전해야 합니다.
기쁜 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의 권세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다는 소식.
믿음의 사람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자랑하고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말을 전합니까?
남의 흉
자기 자랑.
베푼 것, 산 것, 어디 갔다 온 것, 자식, 출세, 성공, 승진, 차, 집, 자기 능력 등등.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말은 없고 다 자신이 했다고 하면 과연 믿음의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까?
말이 곧 그 사람의 삶이요 신앙을 나타냅니다.
 
그렇게 자기를 높이는 사람에게 용서와 화해가 있겠습니까?
늘 이해타산적이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교만하니 그런 사람이 가는 곳에는 불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큰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은혜를 모르니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은 들추고 소문냅니다.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하나님의 섭리를 늘 깨달아야 용서와 화해가 있습니다.
 
진실과 간절함이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작은 변화가 또한 감동을 줍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작은 변화에도 기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변화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신령한 복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십니다.
 
묵상
자신의 삶이 진실하다고 사람들이 인정하는가?
자신의 관점과 다른 사람의 관점이 같은가?
자신의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가?
허튼 말, 불필요한 말, 덕이 되지 않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을 자랑하는가 아니면 늘 자신을 자랑하는가?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가?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인도하심을 믿는가?
억울하거나 힘든 때에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나아가는가?
용서함이 있는가?
수 년,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는 감정은 없는가?
자신이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지금 당장은 하지 못하더라도 용서하고자 하는 결단이 있는가?
용서가 쉽게 되지 않는 것이기에 늘 하나님께 기도함이 있는가?
부모님을 모시고자 하는, 효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부모 형제에게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용서하고 화목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는
승리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