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오늘의 양식

2014년 11월 4일 화요일 - '하나님의 진노에서 설 수 있는 자들'

v.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v.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v.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차시리니
v.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가운데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v.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Revelation) 7장13-17절
 
'하나님의 진노에서 설 수 있는 자들'
 
오늘 QT 본문은 요한계시록 7:9-17절 말씀입니다.
9-12절은 천국에서 본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하여
13-14절은 흰 옷을 입은 큰 무리가 누군가에 대하여
15-17절은 큰 무리가 천국에서 누리는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7장은 중간장입니다.
6장에는 마지막 때에 있을 일곱 인이 떼어지는 심판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인까지 떼어졌고 이 땅에는 큰 심판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일곱째 인이 떼어져야 하는데 7장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144,000명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 7장은 6장 제일 마지막과 연결하여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6:17)
이 땅에 하나님의 진노로 큰 환난이 있게 되는데
과연 그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거기에 대한 답이 바로 7장에 나옵니다.
한 마디로 답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보호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 보호받는 백성이 144,000명이라고 하는데 해석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숫자들은 이단들이 많이 사용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오늘날의 신천지가 바로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들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 이미 그 숫자는 훨씬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재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144,000은 구약의 유대 12 지파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유대인들 중에 이런 지파의 구별이 없습니다.
또한 야곱의 12 아들들로 시작된 원래 12 지파와 차이가 있습니다.
단 지파가 빠졌고 대신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 지파가 들어갔습니다.
 
신명기 33장에는 시므온과 잇사갈 지파가 빠져 있고
사사기 5장에는 시므론과 유다 지파가 빠져 있고
역대상 27장에는 갓과 아셀 지파가 빠져 있습니다.
그런 경우와 여기에  단 지파가 빠진 것과 비교해서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세상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에서 단 지파가 빠진 것을
의미심장하게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왜 단 지파가 빠졌는가?
사사기 1:34절을 보면 단 지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자신의 기업을 차지하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을 떠나 북쪽 라기스로 가서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른 지파들도 우상숭배를 했지만
단 지파는 그런 우상숭배에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에 빠졌다는 겁니다.
 
마지막 환난 때에 등장하는 이 144,000명은 유대인들도 있겠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순교자의 길을 가는 믿음의 사람들로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때 인침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세상 마지막 때가 되면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이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환난 중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14절)
 
144,000명과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같은 사람들인가?
같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다르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144,000명에 대해서는 사도 요한이 들은 것이고
그들은 땅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반면 큰 무리는 사도 요한이 본 것이고
그들은 천국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다고 보는 이유는
이 땅에서 마지막 환난을 견디는 자들은 천국에 가며
거기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님의 위로함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큰 환난을 통과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보좌 앞에서 그 분을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이 땅에서와 같은 고통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위로하십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의 샘물을 마시고 영생합니다.
그러니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바로 7장입니다.
 
지금은 믿음으로 인해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마지막 때가 되면 큰 환난이 옵니다.
그럴 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겠는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3:16-18)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구세주로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환난 중에서라도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중에는 분명히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소수일 것이기에 144,000명을 순교자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각 나라, 족속, 백성, 방언이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합니다. (9절)
하나님께서 이 땅 70억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
144000명 만 구원하시는 것은 너무 주님의 희생을 간과하는 것이 아닙니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는 남녀노소 국경을 초월하여 보호받고 구원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지금부터라도 믿음을 지켜가야 합니다.
 
묵상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찬양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자신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구원을 얻었다면 찬양이 있는가?
찬양을 드리지만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부르지는 않는가?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사실로 인해 차별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가?
그런 경우 어떤 마음이 들었는가?
포기하거나 타협하거나 믿음을 떠나지는 않았는가?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큰 환난이 마지막 때에 임하는데 그 때는 어떻게 할 것 같은가?
환난 중에서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자신이 있는가?
어떻게 이기고 지킬 수 있는가?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위로하시고 눈물을 닦아주신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언젠가 가야 할 천국과, 언젠가 주님으로부터 받을 위로를 확신하며
소망을 가지고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나가는
인내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