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통독을 마치고
지난 9일부터 3주 동안 지속했던
구약성경 통독을 마쳤습니다. 청년부
각 조는 최소한 한 번은 함께 새벽에 와서 읽는 것에 동참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목장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거리가 문제가 되지만 가능한 사람들로도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떤 목장은, 어떤
조는 두 사람이 읽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아무도 읽겠다고 하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그룹이나,
목장이 없어서 저와 오신 분들 가운데 몇 분이 함께 읽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성경 읽는 것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데 꼭 가야 되나? 집에서도 계속 읽고 있는데’ 저는 제가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기록된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물론 다 이해할 수 없기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는 것은 필요하기도 하고 중요하지만 잘못하면 해석하는 사람의 편견이 들어갈 수도
있기에 우선은 쓰여진 그대로를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해석학을 공부하거나 관계된 책을 읽어보면 이런 말이 항상 나옵니다. ‘Every reader is
an interpreter’
어떤 모양이든 읽는 사람은 해석을 하게 되기에 모든 읽는 사람이 다 해석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지 않고 자기 머리로 해석을
하게 되면 ‘자기 복음’이 될 수 있고 이단적인 요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기에 읽는
것은 중요합니다.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본분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아니면 알고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시작됩니다. 또한 생겼던 문제의 해결도 말씀에 들어있는데 그것을 알려고도,
행하려 하지 않기에 해결되지가 않습니다.
사도 야고보와 12 사도들이 공동목회를 했던 초대 예루살렘교회라고
문제가 없었는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해결책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본질 즉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겠다고 사도들이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꾼이 세워졌습니다. 그것이 안수집사의 기원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 그것이 일꾼을 세우는 기준이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의 충만이 임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위로부터 임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워졌으니 문제가 해결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믿는 사람들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통해 교회는 더 건강하게 되었고 자라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말은 금방 듣고 행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거나 듣고도 행하려 하지
않기에 변화도 없고 성숙도 없습니다. 새로운 시도도 하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있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거나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눈으로 대충 읽는 것이 아닙니다. 집중하여 생각하며 읽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빠르게 통독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깨달음이 있고, 찔림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쓰여진 말씀이 살아있게 하십니다. 그러니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됩니다. 읽지 않으면 그런 경험이 없고 그런 경험이 없으니 계속해서 읽지를 않습니다.
3주 동안 평균 10명 정도가 참여를 했다고 봅니다. 바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씀을 읽으심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음을 받아 지평이 넓어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지도 못했고 꿈꾸지도 못했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