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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7월 22일 화요일 - '영적 소경'

v.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없더라.
v.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v.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으로다 하거늘
v.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v.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마가복음 (Makr) 8장14-18절
 
'영적 소경'
 
오늘 QT 본문은 마가복음 8:14-26절 말씀입니다.
14-15절은 제자들에게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16-21절은 제자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22-26절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통해 제자들을 깨닫게 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주변을 돌아다니시며 많은 가르침과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칠병이어의 기적, 귀신을 쫓아냄.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떤 분인신가를 알기 보다
예수님의 잘못을 찾아내어 잡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늘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으며
기적을 보고도 또 다른 기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한 의도를 아시고
그들에게 더 이상의 기적을 보여주시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는 않고
늘 의심하고 비판하고 시험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더 이상 그들과 쓸데 없는 변론을 피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도무지 믿으려고 하는 마음이 없이 따지기만 하려는 사람과 대화가 되겠습니까?
 
그러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누룩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효소입니다.
조금만 넣어도 온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그래서 누룩은 두 가지 비유를 할 때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좋은 의미로는 하나님 나라가 시작은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온 땅에 퍼질 것이다.
나쁜 의미로는 죄가 결국은 점점 자라서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죄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점점 자라게 되고 결국에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주변을 오염시키기까지 합니다.
'세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직까지 영적으로 깨이지 못함을 아시고
누룩의 비유를 통해, 또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통해 교훈을 주셨습니다.
최소한 눈으로 보는 것으로 깨달아야 하는데 제자들은 아직까지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적을 일으키고 자연마저도 잠잠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상황이 바뀌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런 모습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과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두 번 안수하여 고치신 것은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한 번 안수했을 때 소경은 희미하게 보았습니다.
두 번째 안수했을 때 소경은 완전히 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도 지금은 보고 들어도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어렴풋이 알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본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세주이심을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도 아직도와 언젠가는 그 사이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영적으로 희미한 제자들을 향해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며, 마음이 둔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둔하다는 말씀은 마음이 딱딱하다, 걍팍하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에 의심과 불만과 시기가 가득하면 영적인 것을 알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무엇을 뿌려도, 무엇을 보아도, 무엇을 들어도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기 전에 겨울 내내 얼었던 땅을 갈아 엎은 다음
돌과 잡초를 제거하여 땅을 부드럽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걍팍한 마음도 갈아 엎어야 영적인 눈이 뜨여지고,
영적인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눈은 뜨고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가 없고
귀도 열려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그는 그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잘못 알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런 그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을 때 그의 눈에서 비늘과 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
그 즉시 그는 편견과 잘못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바로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아직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 눈에서 콩깎지가 벗겨져야 합니다.
그래야 편견, 고집, 전통, 고정관념, 세상 철학, 이단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걍팍한 마음을 뒤엎고 옥토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묵상
죄의 무서움을 알고 있기에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가?
죄가 누룩과 같다는 예수님의 표현을 이해하는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죄가 있다면 어떻게 이기려고 하는가?
혼자 힘으로 가능한가?
혼자 힘으로 안 되기에 포기하거나 적당히 타협하거나 합리화 하는 것은 없는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아는가?
희미하게 알고 있어서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퇴보하는 것은 아닌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영적으로 막혀 있지는 않는가?
늘 하나님께, 보여만 주시면 믿겠으니 보여달라는 신앙은 아닌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보고도, 체험하고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없는가?
자신의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비늘은 어떤 것인가?
버려야 할 편견과 전통과 세속적인 가치관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것을 보도 듣고 믿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음을 아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앞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과 같이
자신이 영적으로 소경이요 귀머거리인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 아직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주님께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간구하여
자신을 밝히보며 주의 영광을 보고 한 걸음 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