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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7월 18일 금요일 - '외식(위선)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

v.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v.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v.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v.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v.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v.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v.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v.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은 지키느니라.
v.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마가복음 (Mark) 7장1-9절
 
'외식 (위선)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
 
오늘 QT 본문은 마가복음 7:1-13절 말씀입니다.
1-5절은 형식적인 신앙에 빠지게 한 사람의 전통에 대하여
6-8절은 마음도 없이 예배를 드리게 하는 사람의 전통에 대하여
9-13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사람의 전통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쫓아다녔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대단한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제껏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가르침과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니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 가운데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와 질투 미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내 (바리새인과 서기관)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 시비를 건 것이 무엇인가?
바로 먹기 전에 손을 잘 씻는 장로들의 유전입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잘 씻는 것은 상식적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법이라면 다른 이야기입니다.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면 그게 죄요 그런 사람은 죄인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법을 주셨는가?
아닙니다.
 
물론 구약에는 정결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들에 대한 법이었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제사장들에 대한 법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학자들은 그 때를 바벨론 포로 이후일 것이라고 봅니다.
 
남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다가 결국 예언대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포로로 잡혀갔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은 늘 깨닫고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은 부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바벨론 사람들은 우상을 섬겼고 우상에게 드려졌던 음식도 먹었습니다.
시장에 나와 있는 고기들은 대부분 우상에게 드려졌넌 고기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그런 부정한 음식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고기를 먹어야 되었기에 그들은 율법에 따라
정결하게 도살하는 곳을 직접 운영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일반적으로 '코셔'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지나치게 외적인 것에 치중한 나머지
사람이 만든 법을 하나님께서 주신 법 위에 놓고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으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Legalism)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이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이 외적인 것은 전통에 따라 잘 지키면서
본질이요 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서는 29:1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니라'
 
예수님께서 시사하신 말씀의 의미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위가 실상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본질인 하나님 말씀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이 처음부터 계명을 폐하려는
목적으로 전통을 세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을 잘 지키기 위해 세운 전통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율법의 본래 정신도 잊어버리고, 율법도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지적하셨고
그런 행위가 바로 '외식하는 자'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외식이라는 단어는 '휘포크리톤'으로
이 단어에서 영어의 위선이라는 hypocrite이 나왔습니다.
그 원래 의미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연기자, 해설자, 통역사입니다.
이 말은 마음과 중심을 숨긴 채, 자신의 본 모습은 감춘 채
가면을 쓰고 단순히 연기하거나 말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성경에서는 비유적으로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위선자라는 뜻으로 사용이 됩니다.
 
오늘날에는 연기자들이 많아 다양한 나이의 배우들을 사용하거나
좋은 분장술로 다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연기자의 숫자가 많지 않고 분장술로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연기자가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해야만 되었습니다.
그런 경우 한 연기자는 배역에 따라 가면을 쓰고 연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배역을 하는 사람은 가면을 자주 바꾸다보니
자기의 원래 모습도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가 바로 속과 겉이 다르다는 위선자의 의미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그것은 본 모습을 감춘 연기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입니다.
겉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 마음은 하나님께서 멀다는 겁니다.
종교 생활을 한 것이지 믿음에 근거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위선적인 예가 바로 고르반이라고 하셨습니다.
 
고르반은 '헌물'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의미합니다.
의미하는 것처럼 이 말은 하나님을 높이려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고 악용이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 드린다는 고르반이라고만 하면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서도 부모 공양의 책임을 피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하지만
돈을 드리는 것이 아까워서 고르반이라고 해놓고는
하나님께도 드리지도 않고 부모공경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런 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기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들이 만든 전통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도 어겼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고르반을 어기면 처벌해야 함이 마땅한데도
그들은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경우 돌로 쳐죽여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들인 자신들이 지키지 않는데 누구를 벌할 수 있겠습니까!
 
식사하기 전에, 밖에서 집에 들어오면 손을 씻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이 손만 잘 씻어도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이 좋은 습관으로 인해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언제인가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았을 때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손을 잘 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치는 이것을 악용했습니다.
유대인들을 말살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이 병을 퍼뜨렸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손을 씻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전통입니다.
손을 안 씻었다고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리면 결국은 사람의 법을 하나님 법 위에 두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 위에 앉게 됩니다.
 
좋은 전통은 지켜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좋은 전통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나라를 위한 기도 등등.
이런 것은 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고 가르치셨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교회는 제도나 전통을 세우기 전에 신중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는 그것이 성경 말씀에 근거하고, 말씀과 일치하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만들어놓고는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들은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탐욕으로 가득찬 마음은 감추고
사람이 만든 전통으로, 예수님을 평가하고,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본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치심,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이 누구인가부터 먼저 아는 것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부터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본질은 빼고 비본질적인 것으로 예수님을 모함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먼 종교 행위요 율법주의입니다.
 
사람은 외적인 것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은 공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면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가 구별됩니다.
그 때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판결에 대해 의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이 보시기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면 그런 겁니다.
 
아무리 자신이 한 번도 예배에 빠진 적이 없고
바른 예물 생활을 했고
열심히 봉사했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기 위함이라면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면
마지막 날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묵상
오늘날 교회에 위선자들이 가득하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에 충실하게 하고 있다고 보는가?
내적인 것을 깨끗케 하는 죄와 회개에 대해 교회가 바르게 하고 있다고 보는가?
오늘날 강단에서 복음이 사라지고 죄에 대해 사라졌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에 어느 것에 더 치중하고 있는가?
오늘날 외모를 바꾸는 성형이 성행하고 있음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외적인 종교생활 (예배, 헌금, 봉사, 구제 등)이 구원을 보장해 주는가?
진정한 마음으로 하는가 아니면 보이기 위함인가?
자기 의로 사람들을 평가한다면, 그것이 율법주의자가 아닌가?
판단하고 비판함이 바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가 아니면 자신을 높이기 위함인가?
외적으로 포장을 하는 이유가 보이지 않는 내면을 감추기 위함은 아닌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함이 없이 헛된 예배를 드리며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것은 없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교회가 법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야 하는가?
말씀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만든 법이 하나님 법 위에 우선되는 것은 없는가?
사람이 만들어놓고는 마치 하나님의 법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없는가?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의 모습을 평가하신다면 어떻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자신이 없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겠는가?
교회의 좋은 전통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교회의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워가야 하기에 가장 먼저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함이 있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이 아닌 형식적인 종교 행위로 하는 것은 없는지
자기 의에 빠져서 바리새인과 같이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은 없는지
본질인 하나님의 말씀부터 바로 세워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우선 자신의 온전치 못한 마음부터
말씀으로 뒤엎고 깨끗한 그릇으로 만드는 거룩한 작업을 시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