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v.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시려고
하시매
v.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v.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v.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v.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마가복음 (Mark) 6장47-52절
'믿음이 약해지는 이유'
오늘 QT 본문은 마가복음 6:45-56절
말씀입니다.
45-49절은 바람으로 인해 힘겹게 노를 젓는 제자들에 대하여
50-52절은 바람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53-56절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고침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바로 제자들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이 동사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강제로 하게 했다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의도로 그렇게
하신 것인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기도시간을 갖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쉴 틈이 없으셨습니다.
잠도 그렇지만 먹을 시간조차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시간을 가지시기 위해
제자들을 먼저 벳새다로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쉼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오는 한 그들은 전과 같이 제대로 쉴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강제로 먼저 떠나보내 좀 쉬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그들에게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2. 제자들로 하여금 사람들로부터 헛된
영광을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또한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아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을 고쳐준 이후에 그들도 어디를 가든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제자들이 연예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따라왔고
그로 인해 제자들은 자신들이 마치 무엇이 된 것처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런 헛된 영광에서 떠나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 그들은 본질은 잊어버리고
세상 인기와 권력에 맛이 들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목적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크게 한 자리 할 것을 위해 따라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순간에도
그들은 후에 누가 예수님 오른편, 왼편에 앉을까로 다투었습니다.
그들의 그런 기대가 예수님께서 잡히심으로 산산조각이 나자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도 너무나 쉽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인기주의, 포퓰리즘의 위험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기를 누리다가 인기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은퇴를 한 사람들이
쉽게 약물이나 알콜 중독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환상 속에 사로잡혀 있으니 현실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울증에 빠지고, 약물에 빠지고, 심지어 자살까지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람의 비참한 삶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주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자신은 겸손히 낮아져야 합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하셨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도중 밤에 풍랑이 생겼습니다.
뱃 사람이 많은 그들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의 풍랑이었습니다.
때는 사경으로, 지금 시간으로는 새벽 3-6시입니다.
그렇다면 동이 트기 전이기에 깜깜해서 앞이 안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육지에서 그들의 모습을 훤히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신 후 갈릴리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로 가셨습니다.
흥미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지나가려고 하셨다는 겁니다.
아마도 제자들의 반응을 보려로 하신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깜깜한 가운데 방향도 잡지 못하고 바람과 씨름하고 있을 때
물 위로 알 수 없는 물체가 다가오니 혼비백산했습니다.
심지어 두려워서 귀신인가라고 소리도 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세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다,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서 '내다'는 말은 ego eimi로 영어로 하면 'I am'
입니다.
이 말은 출애굽기 3:14절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현하시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하실 때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말은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말로
여겼습니다.
그런 'I am'을 사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7번을 사용함으로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려고 했습니다.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로 다가오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즉각 풍랑이 멈추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심히 놀랐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제자들이 그렇게 놀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이 말은 제자들의 마음이 계속하여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죽을 정도의 풍랑이 일 때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어
풍랑이 잠잠해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순종하는 광경도 목격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놀라운 기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로 보지 못하고
여전히 조금 다른 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적을 볼 때마다 놀라는 것을 되풀이 할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이 둔해진 현상입니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앞을 보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니 만납니다.
자신의 경험으로 도저히 헤아리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날라갈 버릴 정도의 고통이 있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매일 힘겨운 씨름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예기치 못한 일을 당했을 때, 지속되고 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변 누군가를 원망하고, 나라를 비판하고.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집니까?
그런 상황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더
가까이 나아갑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반응이 곧 믿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실습도 했던 그들.
가르침에 놀랐고, 병 고침에 놀랐고, 기적에 놀랐던 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상황이 달라지니까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소리지르는 그들.
그것이 바로 마음이 둔해진
결과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고 훈련이 되지 않은
결과입니다.
평소에 예수님처럼 틈만 나면 기도하는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요 하나님과 관계를 깊게 하는
영적인 통로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너무도 쉽게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립니다.
전지전능 하신 분이심을
잊어버립니다.
그 분이 임마누엘 즉 항상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인생의 풍랑이 조금만 불어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 난리칩니다.
그래도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는 사람은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기도부터 시작하며 자신이 혹시 하나님 앞에서 숨긴 죄는 없는지
자신이 잘못하는 것은 없는지부터 돌아봅니다.
그리고 상황이 금방 달라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다시 주님을 향할 수 있게 하심을 알고 도리어 감사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기 원하십니다.
때로는 그런 믿음을 보시기 위해,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지나가려고 하신 것처럼
우리를 약간 흔들어
보십니다.
믿음도, 기도도
훈련입니다.
한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삶이 체질화
되어야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누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바라보고 기도하는 삶이 됩니다.
그럴 때 놀랍게도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묵상
좋은 습관이 있는가?
어느 정도 했기에 저절로 하게끔 되는가?
영적인 좋은 습관이 있는가?
때로 쉼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서 쉬는가?
쉬고 났는데 더 피곤하지는 않는가?
예수님처럼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는 것이 쉼이라고 생각하는가?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QT가 체질화 되었는가?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왔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가?
주님께 보이는 믿음을 가졌다고 보는가?
마음이 둔해지지는 않았는가? (영적으로 깨어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심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깨닫고
사는가?
제자들은 기적을 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잊어버렸는데, 자신은
어떤가?
약함이 강함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 자신이 감당이 안 될 정도의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그 믿음대로 확신하는가?
세상 사람들처럼 인간의 헛된 영광과 인기를 늘 갈구하는 것은 없는가?
그런 것이 없어지거나 낮아지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영적으로 둔해지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다시 주님을 향하고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눈앞에 보이는 환경으로 인해 소리지르고 두려워하지
않고
행하는 믿음으로 나아가 주의 영광을 보는,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믿음의 길을 계속하여
걸어가는
회복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