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 그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v.2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v.3 또 자기와 함께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v.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v.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v.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v.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v.8 사울의 군사령과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v.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사무엘하 (2 Samuel) 2장1-9절
'주권을 인정하는가?'
오늘 QT 본문은 사무엘하 2:1-17절 말씀입니다.
1-7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다의 왕에 오른 다윗에 대하여
8-11절은 인간의 욕망에 따라 세워진 이스보셋 왕에 대하여
12-17절은 두 왕으로 인해 생긴 헛된 싸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울이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죽은 후에 자연스럽게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처럼 이스라엘의 통합 왕이 되지 못하고
유다 지파가 중심이 된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7년 반 동안 거기를 다스렸습니다.
반면 나머지 11지파 사람들은 다윗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사울 왕의 아들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왕으로 세운 주축 인물은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이었습니다.
인간들의 탐욕으로 인해 왕이된 이스보셋은 불과 2년 밖에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넬의 탐욕으로 인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탐욕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탐욕은 감춘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정통권을 내세워 사울의 아들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왕이 두 사람이기에 두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한 동족이지만 서로 간의 기 싸움으로 인해 용사 24명이 죽습니다.
이스보셋 쪽의 군대장관인 아브넬과 다윗 쪽의 군대장관 요압이
장난 삼아 대결을 하자고 한 것이 결국 세움을 받은 모두를 죽게 했습니다.
사람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대리를 세워 서로의 힘을 겨룬 것입니다.
그 리더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용사 24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엄밀하게 보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답게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가장 위대한 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우신 것을 알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때로 이런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시시콜콜 한 것까지 대답하십니까?'
'그런 것까지 물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묻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반면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은 자신이 주인이라는 말이 됩니다.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말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은 처음에는 좋아보이지만 나중에 가면 꼭 문제가 됩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울 왕에게 은혜를 입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길보아 산에 올라
사울 왕의 시체를 가지고 와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일 주일 동안 금식하며 애통해 했습니다.
다윗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위 사람들이 한 말을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선한 행위를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에게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서 자기 뜻대로 하지 않은 것은
그가 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경우 대가를 바라고 선을 행한 사람은 언젠가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면 뒤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왕에게 자신이 왕으로 밀었기 때문에 된 것이라 하면서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마 6:3)
그만큼 선한 일을 한 다음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습니까?
자신이 한 것을 알아주기 원하고 칭찬받기 원하기에 떠벌립니다. 자랑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그것을 빌미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 중심에는 감춰진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염소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왕이시고 자신은 피조물에 불과함을 압니까?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을 죽인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살아있으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입에 붙은 말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주여'라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과연 '주여'라는 말을 알고 하는 것인지?
주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주인이라면 우리는 종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주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5:24)
그렇게 고백했던 사도 바울도 처절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의 처절한 갈등이 로마서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가 이런 탄식을 했겠습니까!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위해 날마다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나의 주관, 가치관, 경험, 지식.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고, 위로부터 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는게 어렵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는 교회를 보면 꼭 자신이 창립멤버라고 하거나
자신이 이 교회에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온 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되면 교회를 흔들고, 파를 만들고, 결국 깨지게 합니다.
일을 많이 할수록 반비례하여 말은 줄여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모든 수고가 아름다운 열매가 되고
교회가 굳건하게 서게 됩니다.
묵상
예수님을 자신에게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면 그 의미를 알고 하는가 아니면 습관적으로 하는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후, 주권을 내어드렸는가?
한 순간에 포기하기가 어렵기에 살면서 하나 하나 내어드리는가?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
선을 행하고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직도 강한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그 차이를 아는가?
양은 선행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염소는 했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데 자신은 어느 쪽인가?
남을 도와준 후 그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갚는 사람인가?
남들이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욕망은 없는가?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은 없는가?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하는가?
아직도 갈등에서 끝나고 이기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먼저 묻는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위대하시지만 또한 섬세하신 분이심을 아는가?
오늘 하루, 거룩한 주일을 앞두고,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가장 먼저 묻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준비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