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v.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v.3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v.4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v.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v.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v.7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사무엘상 (1 Samuel) 11장1-7절
'위기가 기회로 되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 QT 본문은 사무엘상 11:1-15절 말씀입니다.
1-5절은 암몬에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함으로 생긴 일에 대하여
6-11절은 의로운 분노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모으고 암몬에 대해 승리한 사울에 대하여
12-15절은 모든 백성의 인정을 받고 초대 왕으로 취임하는 사울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되는 세 가지 과정이 있습니다.
1.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2. 제비뽑기를 통해 뽑힘을 받고
3. 전쟁을 통해 인정받고 취임하는 세 가지 과정입니다.
사울이 두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사울을 확실히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암몬이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해 왔습니다.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 동편, 갓 지파 땅입니다.
암몬은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과 친족 관계가 되는 나라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두 딸 가운데 작은 딸의 후손이 바로 암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출애굽할 때부터 늘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적인 블레셋과는 동맹 관계였습니다.
그들이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해 왔을 때 길르앗 야베스는 항복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항복을 받아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그들은 이스라엘을 모욕하기 위해 그 항복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7일간의 말미를 구하고
그 모든 일들을 동족들에게 알리기 위해 기브아로 전령을 보냈습니다.
왜 하필이면 기브아인가?
물론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뽑힌 사울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그들이 과거 사사시대에 베냐민 지파 편에 선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삿 21장)
그들의 말을 들은 기브아 사람들은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또한 사울도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몰던 두 마리의 소를 죽여 부분으로 나눈 다음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보내면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 동족 길리앗 야베스가 어려움에 처했기에 함께 도와야 하는데
만약 도움을 주지 않는 지파가 있다면 그들의 소도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를 들은 이스라엘 지파는 한 사람 같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사울의 분노입니다.
사울의 분노는 단순히 자기 동족이 어려움에 처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울의 분노는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분노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의로운 분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자기 감정으로 인한 분노와 의로운 분노는 다릅니다.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떤 일에도 화를 내면 안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인한 의로운 분노는 있습니다.
그런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분노입니다.
예를 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로 돌리는 것과 같은 겁니다.
진리의 성경 말씀대로 따르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을 주장할 때입니다.
그런 때는 분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내실 때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거룩해야 할, 만민이 기도하는 아버지 집이 장사치들의 이익을 주는 장소가 되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환전하는 상을 뒤엎으셨습니다.
또한 성전 안에서 매매가 되는 제물들을 채찍으로 다 쫓아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로운 분노입니다.
사울의 의로운 분노는 온 이스라엘 지파를 하나로 묶게 했습니다.
한 마음으로 나와 동족을 돕게 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사울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1대 왕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나라의 위기가 기회가 되었습니다.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1. 평소 좋은 관계가 위기의 때에 도움을 받게 합니다.
인생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럴 때 평소에 은혜를 베푼 사람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합니다.
2. 공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울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지역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지역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사울 자신은 왕으로 확실히 인정을 받았고 나라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몇 시간 앞두시고 기도하신 것이 바로 하나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될 것을, 앞으로 제자들을 통해 믿게 될 사람들도 하나가 될 것을 기도하셨습니다
기준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 된 것처럼 입니다.
완전한 하나 됨입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님에 붙어 있는 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건강하다면 모든 지체가 서로 연결이 되어있고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낍니다.
그러나 오늘날 병든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한 지체가 아픈데 다른 지체가 느끼지를 못합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몸은 병들었지요!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족이요, 한 지체이기에 관심과 공감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들었습니다.
3. 의로운 분노는 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을 갖습니다.
화를 전혀 내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화를 내일로 넘기면, 죄가 됩니다.
감정에 지배되는 것과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다릅니다.
감정에 따르는 행동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성령님을 따르는 행동은 하나됨과 승리와 같은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 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의는 자기 기준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는 공평하고 정의롭기에 질서를 세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하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4.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신이 왕으로 추대가 되었을 때 반대했던 사람들에 대해
처벌하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럴 때 사울은 두 가지를 했습니다.
하나는 승리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좋은 날 나쁜 일이 있어서는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권력의 속성 중 하나는 권력을 쥐고 나면 반대자를 제거하는 겁니다.
그러고나면 하나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권력을 쥐었을 때 경쟁자를 관용으로 대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진정으로 왕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게 하신 분이 누구인가?
왜 전쟁이 생겼는가?
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사울을 찾아왔는가?
왜 사울에게 의로운 분노가 생겼는가?
왜 사울이 대적자를 용서하게 되었는가?
바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위기가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섭리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위기가 왔다고 낙심하고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위기가 기회가 됩니다.
묵상
삶에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여긴 적이 있는가?
고난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한 도구임을 아는가?
가족에 대해, 교회 지체들에 대해, 나라에 대한 관심이 있는가?
같이 아파하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하는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몸이 정상이라고 보는가?
하나됨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분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조건 화를 내면 잘못인가?
화가 자기 감정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의로운 분노인가?
쉽게 감정에 빠지는가 아니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는가?
자신을 공공연하게 반대하고 대적했던 사람을 쉽게 용서할 수 있는가?
자신을 공공연하게 반대하고 대적했던 사람을 쉽게 용서할 수 있는가?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성령충만으로 가능함을 믿는가?
매일 성령충만을 구하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삶에 다가온 위기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돌아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기회로 만들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가족과 지체들을 돌아보고 공감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됨을 만들어가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