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날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v.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v.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v.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v.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행전 (Acts) 2장29-33절
‘예수님의 두 가지 신분’
오늘 QT 본문은 사도행전 2:22-36절 말씀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도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이상히 여겨 모인 무리들에게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증거합니다.
그의 이런 행동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마지막 유언의 말씀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간략하지만 정확하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그 분을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는지,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선포합니다.
여기서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담대히 전합니다.
후에는 관원들이 이것을 ‘부활의 도’라고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런 모습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 있는 베드로는 배우지 못한 어부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다윗은 예수님의 선조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실 메시아를 알고 ‘주’ (Lord)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죽어 장사되어 그 무덤이 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기에 빈 무덤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 되심을 선언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살리셨다는 말입니다.
이 선포에는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이 모두 하나님의 정하신 뜻임이 들어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 것 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단순히 죄용서를 받고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으로 갑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죄용서 뿐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차이가 그것밖에 없다면
그리고 죽으면 똑 같아면 믿을 이유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죽으면 육체는 남아 결국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삽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기에,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신분) 두 가지로 선포합니다.
하나는 주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입니다. (36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메시아로만 압니다.
말 그대로 예수님은 구세주라는 말입니다.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믿은 후에는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 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 분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요즘 말하는 Lordship을 회복하자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한치의 거짓이 없습니다.
살아계실 때 주셨던 말씀대로 승천 하신 후에는 바로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성령의 충만으로, 잡힐까 도망가서 숨었던 제자들이
이제 담대히 목숨을 걸고 예수님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80도로 바뀐 모습이 바로 성령충만의 또 다른 증거입니다.
묵상
예수님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증거할 수 있는가?
예수님을 증거할 수 없다면 무엇 때문인가?
죽으심, 부활, 그리고 승천에 대해 먼저 확신하는가?
그런 확신이 없어서 침묵하는 사람은 아닌가?
아니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아서 이기에 충만을 구하는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죄를 지음으로 또 다시 못 박는 것은 아닌가?
만약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계속해서 동일한 죄를 짓는다면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예수님은 자신에게 어떤 분이신가?
단순히 구주로 끝나는가 아니면 그 다음에는 삶의 주인으로 여기고 섬기고 순종하는가?
정말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여전히 자신이 주인인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면서 혹시 다른 무엇을 주인으로 삼는 것은 없는가?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라는 찬양처럼 내려놓아야 할 것은 없는가?
부활을 믿는다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 앞에 서야 한다면 부끄럽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을 가장 먼저 고쳐야 하겠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충만으로 담대히 그러면서도 논리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했던 베드로처럼 성령충만을 구하고 받아
먼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고백하고 확신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활의 도를 전하는, 진정한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