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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3년 4월 9일 화요일 - '믿음이든 진실함이든 증명 되는 삶인가?'

v.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v.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v.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v.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v.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v.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창세기 (Genesis) 42장12-17절
 
'믿음이든 진실함이든 증명 되는 삶인가?'
 
오늘 QT 본문은 창세기 42:9-20절 말씀입니다.
 
9-14절은 형들을 정탐꾼으로 모는 요셉에 대한 말씀이고
15-17절 말씀은 형들을 가두는 요셉에 대한 말씀이고
18-20절은 다른 제안으로 막내를 데려오라고 명령하는 요셉에 대한 말씀입니다.
 
드디어 요셉은 형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다가 노예로 팔아버린 그 형들.
 
그 형들과 요셉이 다시 만난 것이 몇 년 만인가?
최소한 20년은 지났습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릴 때가 17살이었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때가 30살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꿈의 해석대로 7년 풍년이 왔고 다시 7년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면 최소 20년은 지났습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서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모든 고난과 아버지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제는 가나안 땅에 사는 부모 형제의 일을 잊었다는 의미입니다.
애굽에서 과거는 잊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새 출발하려고 하는데 그 형들이 자신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다시 과거가 되살아났습니다.
미움과 반가움이 밀려왔지만 요셉은 감정을 자제하고 형들을 시험합니다.
 
그것은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가면서 가정에 대해 알고자 했습니다.
형들이 변했는지를 알고자 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또 동생 베냐민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과거 형들이 아버지의 편애로 자신을 미워했었는데 형들이 베냐민에게 그렇게 한 것은 아닌지.
또 형제들 사이에 우애가 깨진 것은 아닌지.
 
그들이 정탐꾼이라고 오해를 당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한 아버지의 형제요
또 막내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한 아버지를 모신 형제라는 것이 정탐꾼이 아니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것은 아버지가 자식을 정탐꾼으로 내보낸다면 최소한 한 두 명은 남겨둔다는 말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잘못되는 경우 자식을 다 죽게 하겠는가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막내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하고 또 한 아들은 없어졌다고 하니
요셉은 그것을 빌미로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그 막내아우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누가 남을 것인가?
누가 갈 것인가?
형제들은 사흘 동안 고민하고 갈등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들의 모든 말과 행동을 엿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형들에게는 그들의 인생 가운데 최고의 위기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나 진실함은 말로는 안 됩니다.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입증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가장 마지막 시험은 무엇이겠습니까?
 
형제들, 평소에는 우애가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위기 때에는 달라집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세대인 요즘은 평소에도 그렇게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부모를 모시는 것으로 인해 서로가 손해나 희생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돈 문제로 싸웁니다.
그러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장례 비용과 유산 문제로 싸웁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형제 우애가 드러납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드러납니다.
 
바로 이런 것을 뻔히 아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다고 여깁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재물, 즉 돈은 아무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한 비교를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오늘날 현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모든 형제든 돈에 관계가 되면 양보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싸우고 안 되면 법정에까지 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런 사랑과 믿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건가?
바로 재물 즉 돈입니다.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물질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믿음이 있다고 하겠는가?
그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직분자가 되겠는가?
최소한 믿음의 본이 되는 직분자는 재물에 대해 자유로워야 합니다.
 
묵상
자신의 진실함을 삶으로 증거하는가?
말뿐인 질실, 말뿐인 믿음은 아닌가?
하나님 앞에서 재물에 대해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가?
자신에 대해서는 아깝지 않게 쓰면서, 빚이라도 내면서 하나님께는 어떤가?
자신의 재물에 대해 온전하지 못함을 이리저리 핑계대며 합리화하지는 않는가?
자신이 직분자라면 십일조와 예물 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는가?
형제지간의 우애는 어떤가?
부모를 모시는 것으로 인해 갈등하고 원수처럼 지내지는 않는가?
형제지간에 돈 문제로 다툼은 없는가?
그런 경우 먼저 믿은 사람으로 양보하고 손해 볼 수 있는가?
자신은 감정을 잘 다스리는 편인가?
그저 자신의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는가?
그런 모습이 상대방은 물론 공동체에 덕이 되는가?
특히 자녀들 앞에서, 후배들 앞에서의 모습이라면 어떤 영향을 주겠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좋지 않은 과거를 잊으려고 하는 것이 있는가?
좋지 않은 과거에 대해 지금까지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품고 있는 것은 없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과거에 대해 자유로운지
자신의 믿음과 진실함이 하나님께 검증이 되고 있는지
특히 어렵고 힘든 때 나의 말과 행동은 어떤지 돌아보고
십자가에 정과 욕심과 과거는 못 박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듭나고 검증된
믿음의 삶을 살기를 애쓰는 승리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알림>
금년 교회 목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질화하는 해' 입니다.
 
'오늘 QT 하셨습니까?'
개인의 삶에, 그리고 어떤 모임이든 그날의 QT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화요 캠퍼스 모임은 눈, 비, 바람으로 인한 기상으로 쉽니다.
 
오늘 심한 바람과 함께 일기가 좋지 않습니다.
특히 운전에 유의하시고 안전하기를 기도합니다.
화요일 7:30에는 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수요일 7시에는 리더 모임이 있습니다.
 
금요일 7시에는 찬양 예배가 있습니다. 이어 청년부 소그룹 모임도 있습니다.
 
토요일 7시에는 아침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이번 주 암송구절은 요한복음 14장14절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