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들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v.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v.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v.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Genesis) 14장17-20절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대한 반응'
오늘 QT 본문은 창세기 14장17-24절
말씀입니다.
17-20절까지는 살렘 왕 멜기세덱과의 대화에 대한 말씀이고
21-24절까지는 소돔 왕과 대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누구인가?
살렘은 샬롬으로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살렘 왕이라는 것은 어디를 의미하는가?
바로 예루살렘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는 왕으로서 동시에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성경에 처음으로 제사장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축복의 기도를 합니다.
그 축복의 기도에 멜기세덱은 승리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선언합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그의 말 속에 아브람이 치른 전쟁의 승리가 과연 어디로부터인가를 분명히
말해줍니다.
전쟁에서 승리케 된
근거가 아브람의 군사들이 용맹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기습적인 전략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숫자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브람의 손에 붙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아브람은 즉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것 중에 1/10일 즉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말은 아브람이 그의 말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아브람의 군사가 용맹했고 작전이 좋았지만
전쟁에 익숙하고 훈련된 군대를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아브람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는데 멜기세덱이 선언하니까
전쟁을 승리케 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하나님께서 대장되셔서 싸우시는 전쟁에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전쟁을 하려고 하면 힘도 들고 많은 손해도 감수하게
됩니다.
또한 이긴 경우 자신의 힘과 지혜로 한 것처럼 생각하기에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는 자신의 이익의 1/10을 드렸으면서도
소돔 왕이 전쟁의 모든 노획물들을 다 가지라고 했을 때는 하나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한다는 믿음이 들어있습니다.
그는 그런 것을 받아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오직 하나님이 중요함을 점점 강하게 느끼기에 변화되고
있습니다.
묵상
우리의 전쟁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인데 누구를 의지하고
싸우는가?
승리한 이후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는가?
승리케 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며 귀한 예물을
드리는가?
혹시 자신이 뛰어나서 그런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교만하지는
않는가?
재물에 대한 욕심은 없는가?
오늘 기도에 관한 말씀은 넷째 주로 성경의
모범적이 기도 가운데 '주님의 기도'
입니다.
중심 구절은 마태복음
6장9-13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와 드리는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바라는 기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가 없이는
거룩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와 상관 없이 그 분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쁘게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과 나라를 위해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고백과 결단이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이 가려집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바로 살겠다는 결단이
바로
주기도문의 앞부분에
들어있습니다.
그 후반부는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용서는 우리가 먼저 용서할 때 우리의 죄도 용서받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죄를 가지고서는 우리의 죄도, 우리의 기도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이 땅은 영적전쟁터이기에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도록
또 악에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누구에게, 무엇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까?
기도를 응답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모든
필요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에 대한 의식이 있습니까?
사탄과의 싸움에는 결코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인정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시험과 악에 대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말씀을 되새김질 하면서 이 땅에서의 모든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속함을 고백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