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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11월 18일 화요일 - '대접 심판과 그로 인한 땅에서의 반응'

v.10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v.11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v.12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v.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v.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v.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v.16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요한계시록 (Revelation) 16장10-16절
 
'대접 심판과 그로 인한 땅에서의 반응'
 
오늘 QT 본문은 요한계시록 16:10-21절 말씀입니다.
10-12절은 다섯째 대접 심판과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13-16절은 여섯째 대접 심판으로 인한 마지막 전쟁을 준비함에 대하여
17-21절은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인해 무너진 바벨론 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심판에 이어 마지막 일곱 대접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인이 떼어지면서 이 땅 1/4이 피해를 입고
나팔이 불어지면서 이 땅 1/3이 피해를 입지만
대접이 부어지면서는 총체적인 심판이 임합니다.
첫째부터 넷째 대접까지지 재앙은 피조물에 대한 것이었지만
(땅, 바다, 강, 물, 해)
다섯째 재앙은 사탄의 보좌 즉 사탄의 영역에 내려진 재앙입니다.
 
다섯째 대접이 쏟아지자 사탄에게 속아 암흑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해 너무 고통이 심해 자살하기 위해 혀를 깨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런 중에서도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은 더 이상 죄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의미합니다.
심판을 받아도,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비방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여섯째 재앙은 흔히 말하는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흉내낸 마귀의 삼두체제가 총력을 기울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끌어모으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그 셋을 (용,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더러운 개구리의 영으로 표현했습니다.
 
레위기 11:10절에 근거하면 개구리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애굽에 임했던 10가지 재앙 가운데 두 번째 재앙이 개구리 재앙이었습니다.
이 셋이 하는 것이 왜 더러운 개구리 영과 같은가?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가 되면 그들 또한 최후가 가까운 것을 알기에
최후의 발악을 하며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브라데 강이 마른 것을 이용하여
아마겟돈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최후 전쟁을 준비하게 합니다.
 
아마겟돈이 어디인가?
우선 이 단어는 '하르' '므깃도'라는 단어의 합성입니다.
그 말은 므깃도의 언덕, 므깃도의 산지라는 의미입니다.
이 므깃도는 구약에 등장합니다.
사사시대 드보라의 아들이 노래하는 중에 언급이 되었습니다. (삿 5:19)
또한 남 유다의 위대한 개혁 왕으로 꼽히는 요시아 왕이
애굽의 느고 왕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한 곳이 바로 므깃도입니다. (왕하 23:29, 대하 35:20-25)
그렇다면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므깃도라는 의미는 패배의 상징이 아닌가 여깁니다.
 
므깃도가 오늘날 정확하게 어디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구약에서 언급한 그 곳일지라도 과연 그 곳에서 몇 억이 되는 군대가
문자적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전쟁은 예루살렘 밖의 팔레스타인 어느 곳으로 봅니다.
 
그리고 일곱째 대접이 부어지면 큰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 지진은 문자적인 의미로 진짜 지진이라고도 볼 수 있고
영적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완전히 새롭게 하시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또 다시 반복되는 것으로
그런 재앙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무서운 점이고 마귀는 이 죄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심판밖에는 없습니다.
 
죄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자랍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이 모든 말들이 바로 죄의 전염성과 죄의 자람에 대한 말입니다.
 
회개가 그런 재앙을 막습니다.
미루면, 쌓이면, 마음이 걍팍해져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찔림도 갈등도 없이 더 큰 죄로 나가게 합니다.
그래서 병도 일찍 발견하면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죄도 알고 바로 회개하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용서함을 받습니다.
 
회개란 그저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란 돌이키는 것입니다.
가던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죄가 없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에는 합당한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저 입술의 고백인지 아닌지는 지난 후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경외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게 되고, 죄의 대가를 받아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남을 원망합니다.
돌이키지도 않고 자기 책임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상실한 마음 그대로 살게 내버려 두셨다가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로마서 1장)
회개만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 살 길입니다.
 
묵상
죄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현대의 문화로 인해 죄에 대한 인식이 점점 무디어지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가?
전에는 죄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괜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없는가?
전과 같이 행하면서 마음에 갈등도 없는 것은 아닌가?
점점 죄가 만연하고 강도가 세게 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 때가 가까움의 징조가 아닌가?
죄로 인해 개인이, 가정이, 교회가 흔들리는 것이 악한 영의 발악인 영적전쟁으로 여기는가?
어떻게 예비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보는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를 주신다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예수님의 처음 메시지가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인데 지금도 유요하지 않는가?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는 삶인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대적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가?
아니면 운이나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없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진정으로 두려운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대로 이 땅에 심판이 임하는데도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도록
날마다 깨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