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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 '알곡과 포도 추수의 차이'

v.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v.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v.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v.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v.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계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v.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v.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요한계시록 (Revelation) 14장14-20절
 
'알곡과 포도 추수의 차이'
 
오늘 QT 본문은 요한계시록 14:14-20절 말씀입니다.
14절은 심판의 권한을 가지신 인자되신 예수님에 대하여
15-16절은 종말론적으로 알곡인 의인을 거두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17-20절은 종말론적으로 악인을 심판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이 되면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의 완성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날에는, 주의 날에는 기쁨과 통곡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때는 의인을 찾고 악인을 멸하기 위해 오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알곡과 포도의 환상입니다.
 
우선 사도 요한은 구름 위에 앉아계신 인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금 면류관을 쓰신 이 분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것은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름 위에 앉아계시는 모습입니다.
'종말장'인 마태복음 24:30절이나, 바울의 계시록이라고 불리는 데살로니가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구름 위에 앉아계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 의미는 사도 요한 당시나, 지금이나
예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예수님의 손에 있는 낫으로 추수가 이루어집니다.
이 추수에 등장하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곡식인 알곡이고
다른 하나는 포도송이입니다.
 
알곡과 쭉정이의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옵니다.
사람들이 잘 때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추수 때가 가까워지니 가라지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종이 가라지를 뽑을 것인지 주인에게 물었더니
주인은 혹시라도 가라지를 뽑으면 알곡까지 뽑힐지 모르니
추수할 때까지 그냥 두어, 알곡은 곳간으로, 쭉정이는 불에 태우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가 바로 세상 마지막, 심판 날에 이루어집니다.
 
알곡은 의인을 말하는 것으로 그들은 마지막에 곳간 즉 천국으로 인도가 됩니다.
그렇다면 악인은 당연히 불에 태워지는, 불못에 던져집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알곡을 쭉정이로 오인하여 뽑을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알곡과 쭉정이의 뿌리가 서로 엉켜있기에
잘못하면 알곡까지도 뽑힐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추수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가 그 때 구별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도 알곡과 쭉정이는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다 알곡이겠는가?
그렇다면 교회에 분열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과 염소의 비유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 앍곡인지, 쭉정이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환상이 바로 포도송이의 환상입니다.
포도송이가 다 익었기에 거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둔 포도송이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틀에 넣어져 밟힙니다.
그러면 당연히 포도즙이 나와야 하는데
놀랍게도 포도주 틀에서 피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포도주 틀을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로 표현했습니다.
 
그 피가 얼마나 많았던지 말굴레까지 올랐고 (말의 머리에 씌우는 굴레)
포도주 틀에서 나온 피가 무려 1,600스다디온까지 퍼졌습니다.
한 스다디온은 일반적으로 180m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1,600스다디온은 거의 300km나 됩니다.
이 거리는 당시 팔레스타인의 남과 북의 길이와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온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4 x 4 x 10 x 10, 4는 사방, 10은 완전 = 온 세상)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던 요엘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3: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세상 마지막 날에는 의인은 천국으로, 그리고 악인은 불못으로 던져집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는 분명히 구별됨이 있습니다.
그 날이 심판날이 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묵상
심판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다고 보는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바르다고 보는가?
사람들이 말하는 평가가 늘 옳다고 보는가?
세상 마지막 날에 왜 구별됨이 있다도 보는가?
비슷한 알곡과 쭉정이, 비슷한 양과 염소의 비유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언제 오시더라도 심판주이신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삶인가?
혹시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는 것은 없는가?
추수할 때가 점점 가까이 온다고 여기지 않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인가?
 
오늘 하루, 주일을 앞두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언젠가 추수의 때에 의인은 구하시고 악인은 심판하시는 예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서도록, 깨어서 말씀을 보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행하기로 결단하고 애쓰는 알곡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