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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10월 24일 금요일 -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의 평가'

v.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v.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v.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아노라.
v.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v.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Revelation) 2장1-5절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의 평가'
 
오늘 QT 본문은 요한계시록 2:1-11절 말씀입니다.
1-3절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예수님이 칭찬의 말씀에 대하여
4-7절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책망의 말씀에 대하여
8-11절은 서머나교회를 향한 칭찬과 약속에 대한 말씀입니다.
 
계시록의 전체적은 구조는 1:19절에 있는 말씀처럼
네 본 것과 (1장)
지금 있는 일과 (2-3장)
장차 될 일 (4-22장)으로 구분이 됩니다.
 
지금 있는 일은 소아시아에 있는 7교회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각 교회에서 주시는 말씀에는 공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예수의 모습-> 예수님의 칭찬/책망-> 예수님의 진단 (경고)-> 예수님의 약속
그리고 마지막에는 성령이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말씀으로 마칩니다.
 
교회에 대한 평가는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오류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평가와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교회에 보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그 교회의 진단과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것은
각 교회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지만 그것을 듣고 행하는 것은 각 교회의 문제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칭찬과 책망이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외적으로 선한 일을 많이 했던 교회였습니다.
수고, 인내, 이단들에게 넘어가지 않고 구별하여 거짓을 드러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고 참고 인내하고 부지런했습니다.
주변의 핍박이 심한 상태에서 이런 행위를 가지는 것은 쉽지가 않기에
예수님께서는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들을 향해 책망의 말씀도 주셨습니다.
그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처음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뜨거웠던 과거를 의미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처럼, 말씀을 사모했고 뜨겁게 기도했고
모이기에 힘썼던 교회였습니다.
서로 자기 것이라 주장함이 없이 나누는 공동체였습니다.
감사와 찬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열정이 식었다는 겁니다.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와 사람을 향한 사랑이 없이
의무적으로, 형식적으로 하는 행위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회고하고, 회개하고, 그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베소교회의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겁니다.
촛대는 1장을 보면 교회를 의미합니다.
에베소교회를 옮긴다는 말은 장소를 옮긴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없애버리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생명나무는 에덴 동산에 있었던 나무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시 들어와서 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천사로 하여금 지키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땅에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돌이키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생을 얻습니다.
교회는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서머나교회에는 책망은 없고 오직 칭찬만 받은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외적인 핍박과 그로 인한 궁핍함을 잘 이겨냈습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아
감옥에 열흘 동안 갇히는 일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셨습니다.
열흘이라는 기간은 문자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난이 길지 않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머나교회 성도들이 그런 외적인 핍박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만 오히려 그들이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적으로는 가난한데 실제로는 부자라는 겁니다.
왜 그런가?
바로 그들이 영생을 소유한 사람들이요 평강과 기쁨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것이 없었다면 그들이 외적인 핍박에 견딜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죽을지언정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가 없다.
 
여기서 둘째 사망이 언급이 됩니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둘째 사망이 있는가?
둘째 사망은 계시록 20장과 21장에 다시 자세히 언급되는 것으로
흔히 말하는 최후 심판이 있은 후에 있을 사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언젠가 이 땅에 다시 심판주로 오십니다.
그리고 모든 악을 멸하고 나면 공평한 최후 심판이 있습니다.
그 때는 믿어 이미 낙원에 있는 사람들과 믿지 않아 지옥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최종 판결을 받는 날입니다.
 
그 날에 이미 믿은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완전한 부활체를 덧입게 되고
믿지 않아 지옥에 있던 사람들은 지옥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둘째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말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한 번밖에 죽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지금도 예수님은 살아서 불꽃 같은 눈으로
세상을 향해서는 감찰의 눈으로 보고 계시지만
성도와 교회는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도록 도와주시고
지금도 성령 하나님을 통해 교회에게, 개인에게 말씀하십니다.
 
귀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지 말고
그 말씀을 들을 대로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모든 것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그래서 지키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인 영생이 보장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고난은 옵니다.
오히려 열심을 내면 낼수록 더 큰 시험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열심을 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사탄의 당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예수님께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만약 회고하고,회개하고, 회복하지 않는다면
영생은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이단들이 많았고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흔들었습니다.
외적으로 보기에 구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럴듯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영적으로 깨어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들을 교회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교회는 영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영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묵상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믿는가?
만약 오늘, 예수님께서 자신과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 것 같은가?
칭찬의 말씀인가 아니면 책망의 말씀인가?
무엇을 회고하고 회개하고 회복해야 하겠는가?
교회가 전투공동체임을 자각하고 자신이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하는가?
여러 가지 말에 대한 기준을 무엇으로 삼고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섬김은 없는가?
처음 사랑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열정과 열심이 있는가?
사랑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변화가 아니라 변질된 것이 있다면 돌이키려고 하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과 핍박이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혹시 지금 그런 고난을 받고 있다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마지막에 주어질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이겨내고 있는가?
터널이 끝나는 것처럼 고난은 잠시고 그 후에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주어짐을 믿는가?
자신이 부족한 것이 많지만 부요한 자로 여기는가?
세상에서 좋다는 것을 가지지 못함으로 인해 가난하다 여기고 그런 것에 갈급하지 않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과 교회에서 주시는 말씀은 아닌지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고 계속하여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회고하고, 회개하고, 회복하여 칭찬을 받으며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