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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10월 21일 화요일 - '사람의 본분'

v.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v.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v.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v.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Ecclesiastes) 12장11-14절
 
'사람의 본분'
 
오늘 QT 본문은 전도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12:9-14절 말씀입니다.
9-10절은 전도자의 정체성과 자신의 수고에 대하여
11-12절은 지혜의 말씀의 영향력에 대하여
13-14절은 인간의 본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시작을 했고
전도자는 인생의 수고가 무슨 유익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전도자는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수고했습니다.
인간 세상의 불합리, 불공평, 알 수 없는 수많은 일들.
 
그러면 인생은 정말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런 답을 줄 수 없는 일로 인해 행복할 수 없는가?
전도자는 자신이 연구하고 살핀 결론을 짓습니다.
 
우선 전도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밝힙니다.
1.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친 사람
2. 지혜의 보고인 잠언을 연구하고 정리한 사람.
 
잠언의 말씀들이 두 가지 좋은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1. 찌르는 채찍과 같다.
찌르는 채찍은 목자들이 가축들을 몰 때 쓰는 막대기와 같은 것으로
나무 끝에 못이 박혀 있어 말을 듣지 않는 가축을
때림으로 인해 바른 길로 들어오게 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지혜자의 잠언은 게으르고 인생을 헛되게 사용하거나
악한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깨달음을 주어
바른 길로 가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2. 잘 박힌 못과 같다.
못이 잘 박혀있다는 것은 스승들의 교훈의 말씀이
마음 깊이 잘 새겨진 것을 의미합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겼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영원히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자신의 고충에 대해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세상의 헛된 것들을 연구하고
잠언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피곤하다는 겁니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것이 있고 힘들다는 겁니다.
마땅히 답이 있는 것이라면 쉽겠지만
인생의 문제에 대해 누가 명쾌하게 답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자는 모든 수고와 노력의 결론을 짓습니다.
우리 말로는 '모든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결론적으로'입니다.
그래서 영어번역에도 'the conclusion'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전도서/전도자의 결론은 무엇인가?
두 가지 동사로 결론을 짓습니다.
첫째, 여호와를 경외하라
둘째, 여호와께서 주신 명령을 지켜라.
 
왜 그런가?
첫째, 이것이 인간의 본분, 즉 인간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은 잠언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경외라는 말은 영어로는 간단하게도 fear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받을 벌로 인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있지만 동시에 존경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그 분이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인간을 지으시고 목적을 주셨기 때문에
또한 그 분은 언젠가 그 목적에 대해 합당하게 살았는지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고 칭찬과 책망을 하실 것입니다.
칭찬을 받은 사람들은 영생으로
책망을 받은 사람들은 영벌로 가게 됩니다.
이것을 안다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 즉 두려워하며 존경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단순히 두렵기 때문에 거리감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지키며 순종함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이 주신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신 말씀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잠언이 찌르는 채찍과 같이 잘 박힌 못과 같다는 말은
성경을 주신 목적과도 같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절을 보면 성경에 대해 잘 정의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으면 찔림이 있습니다.
그 찔림이 바로 우리를 갈등하게 하고 주저하게 하고
쉽게 죄의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합니다.
물론 갈등에서 끝나는 것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갈등을 심각하게 생각하면 돌이키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가 없게 됩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말을 너무나 쉽게 하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나만 그런가?'
'이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한다고 달라지는가?'
'이렇게 하면 요즘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적당히 삽니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변화가 되고 지금까지 온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진리의 길을 추구하며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4:12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자족하며 즐기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이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2)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고
그 인생을 즐길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그 분의 자녀요 백성이라면 말씀에 순종해야
심판에 대한 걱정이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묵상
인생의 본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인생에 대해 나름대로 어떤 결론을 얻었는가?
아직도 세상 철학이나 가치관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가?
믿는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겠는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묵상하는가?
통독도 하지만 그 말씀을 알고 행하기 위해 애쓰는가?
말씀을 대할 때 찔림이 있는가?
그런 찔림을 싫어해서 말씀을 보지 않거나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말씀 앞에서 너무나 쉽게 자신을 변명하고 합리화하지는 않는가?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심판이 있음을 믿는가?
그 심판 때문에 두렵지 않는가?
 
오늘 하루, 전도서의 결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허무한 것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지으심을 알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자족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