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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10월 14일 화요일 -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v.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라.
v.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v.15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v.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v.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 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전도서 (Ecclesiastes) 8장13-17절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QT 본문은 전도서 8:9-17절 말씀입니다.
9-13절은 현실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악인의 형통함에 대하여
14-15절은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하루를 즐기고 만족하는 삶에 대하여
16-17절은 아무리 지혜자라고 해도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악의 문제였습니다.
왜 악인이 더 형통하고 더 장수하는가가 전도자로 하여금 고민에 빠뜨렸습니다.
 
종종 우리 역시도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저렇게 악한 사람들을 내버려 두시는가?
왜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으시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고통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시는가?
 
고난과 악에 대해 질문을 하면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도자 역시 그와 같은 눈에 보이는 불합리에 대해 고민했고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 인생을 즐기라.
이것은 그냥 육체적인 욕망을 따라 마음대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현실에 대해 자신이 원망하고 불평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기에 하나님께 맡기고 자족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구원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바로 그런 삶을 노래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라보면 그렇게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의 눈은 항상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때 자족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전도자는 지혜자였습니다.
전도자는 그런 지혜를 가지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밤낮 열심으로 수고하며, 심지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노력했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것을 사람이 능히 알지 못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행함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피조물인 인간이 능히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전도자는 인간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하고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함을 고백했습니다.
 
쏘크라테스'네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큰 깨달음이라고 했습니다.
학문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자신이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그저 그 넓은 학문 가운데 한 가지를 조금 더 많이 알 뿐입니다.
그러니 파고들면 들수록 겸손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조금 아는게 문제입니다.
 
이 땅에 악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불합리와 부조리가 점점 많아지고 또한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누가 악인이고 누가 의인인지 구별하기도 애매합니다.
서로를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데 과연 그 말만큼이나 바른 것인지 모릅니다.
위선자일수록, 자신을 잘 감추는 사람이 출세하고 유명세를 타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전도자의 말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을 믿기에
그런 세상을 향해 불평 불만을 하기 보다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구별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추구합니다.
심판을 자신이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러니 삶에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왜 악이 존재하는가?
왜 악이 더 성행하는가?
노아의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실 날이 가깝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아직도 복음을 듣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전에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역시 전에는 죄인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저 악인의 심판만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그렇게 되면 자신은 온전할 것인지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입니다.
 
묵상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악이 존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당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럴 때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한 적은 없는가?
자신이 그런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악을 이기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거나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 여기는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자신은 피조물임을 진정으로 고백하고 인정하는가?
하나님의 섭리를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평안을 누릴 수 있는가?
항상 기뻐하라는 바울 사도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의 지혜를 너무 믿는 것은 아닌가?
구원받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긍휼이 여기고 용서하는 마음이 있는가?
자신이 보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들은 다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가?
예수님의 재림이 빨리 오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늘 세상과 남이 먼저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자신부터 돌아보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온갖 불법과 부조리와 불합리와 불공평이 존재하는 악한 현실 속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돌아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고 행함으로
빛된 삶을 살 뿐만 아니라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