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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10월 3일 금요일 - '인생의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v.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v.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은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으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v.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도서 (Ecclesiastes) 2장9-11절
 
'인생의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오늘 QT 본문은 전도서 2:1-11절 말씀입니다.
1-2절은 즐거움도 헛되다고 하는 전도자에 대하여
3-9절은 세상 즐거움을 많이 누려보았던 전도자에 대하여
10-11절은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하는 전도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도자는 지혜를 통해 인생을 알고자 했지만 그것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그는 세상의 즐거움을 통해 인생을 알고자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그에게 인생의 의미를 주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그의 고백은 단순히 허무주의적인 생각에서 내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다 해 본 후에 내린 결론입니다.
그가 추구했던 세상적인 즐거움이 어떤 것인가?
술, 사업, 부, 유흥, 육체적인 쾌락
 
그는 육체의 만족을 위해 술도 마셨고
사업도 벌여서 누구보다도 많은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수많은 노비와 짐승들도 가졌습니다.
수많은 금은보화도 가졌고
매일 연회를 베풀고 성적으로도 즐겼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했고 가졌는가에 대해 10절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였다'
본인이 보기에 마음에 들면 다 했다는 겁니다.
무엇이든지 샀고, 무엇이든지 성취했고, 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다는 겁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당연히 반론이 나옵니다.
'해보지도 않은 주제에 뭘 안다고?'
그러나 솔로몬은 다 해 본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모든 권세와 부를 쥐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생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만족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선 오늘 말씀에 보면 전도자가 이룬 것들을 나열하면서
반복되는 말이 있는 것을 봅니다.
'나를 위하여'
모두가 다 자기 중심적인 삶이었다는 겁니다.
부를 통해, 일을 통해, 사업을 통해, 쾌락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던
전도자의 자기 만족적인 추구임을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요즘 중국의 부자들이 한국에 와서 백화점을 싹쓸이 한다고 합니다.
거기 있는 모든 것을 다 산다는 말도 들립니다.
솔로몬 처럼 눈이 원하는 것은, 마음에 드는 것은 전부 산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집에 가져가 진열해 놓고, 걸치고, 입으면 행복한가?
얼마든지 일시적으로는 기쁨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그런 기쁨이 지속될까요?
또 다시 나가서 새로운 것이 없는지 찾을 겁니다.
그리고 또 사겠지요.
그리고 또, 또,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0절에서 죄를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영원하지 않는 것들이고
행복을 주지 못하는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못해 안달입니다.
 
전도자의 고백처럼 행복은 결코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결코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수고하고 땀을 흘린 다음에 얻는 작은 성취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작은 섬김과 선행이 감동을 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어 갑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대로, 원하는 대로 그냥 쉽게 가지는 것에는
결코 만족함과 기쁨이 없습니다.
오히려 늘 새로운 것에 대해, 비교의식 속에서 갈급함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인생의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영생을 소유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 지금까지 자신이 귀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 즉 똥으로 여겼다는 겁니다.
배설물이 좋다고 끌어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바울은 그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분이기에
다른 그 어떤 것을 다 버려서라도 얻는다고 했습니다.
진짜를 발견한 그것이 진짜 기쁨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의 삶은 자기 만을 위한 삶이 되어서는 기쁘지 않습니다.
나누며 베풀며 사는 삶이 기쁜 삶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처럼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남을 돌아볼 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필요에 대해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만족을 위해, 자기 과시를 위해, 허영심에 살아갈 뿐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노력해서 자기가 벌었으니 자기 마음대로 쓰겠다는 겁니다.
남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발바둥치고, 추한 모습을 보이고,
죽는 것이 두려워 벌벌 떱니다.
왜냐하면 죽음 이후에 준비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에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에 있습니다.
 
묵상
아직도 세상 즐거움을 통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는가?
여행, 취미, 오락, 샤핑, 일, 공부 이런 것들이 영원한 만족을 주는가?
일시적으로 기쁨을 줄 수 있지만 그 후에는 더 큰 것, 더 좋은 것에 대한 갈구가 있지 않는가?
어떤 것이든 자족함이 있고 감사함이 있는가?
늘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는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는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가?
여자들과 날마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쾌락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그런 삶이 사랑이 무엇인지 알며, 행복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혹시 그런 삶을 부러워하지는 않는가? (이율배반적인 모습)
부족함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확신이 있는가?
이 땅에서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상벌이 있음을 알고 사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헛되다고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가?
반면 잘했다고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것 같은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떤 즐거움을 추구하며 사는지 돌아보고
과연 그것이 영원하며 진정한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줄 것인지 생각하고
아니라면 돌이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으로 바꿈으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대로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