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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30일 화요일 - '무엇을 위기로 보고 개혁해야 하는가?'

v.16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각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고 열째 달 초 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v.17 첫째 달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v.18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v.44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라.
       그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에스라 (Ezra) 10장16-18, 44절
 
'무엇을 위기로 보고 개혁해야 하는가?'
 
오늘 QT 본문은 에스라 10:16-44절 말씀입니다.
16-17절은 영적 개혁을 위한 책임자들을 세우고 조사를 진행함에 대하여
18-22절은 이방 여인과 결혼한 제사장들의 명단에 대하여
23-24절은 이방 여인과 결혼한 레위인과 노래하는 자들의 명단에 대하여
25-44절은 이방 여인과 결혼한 일반 백성의 명단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부터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우선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한 것은 바로 영적인 개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학자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를 준비시키셨고
그를 통해 영적 개혁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에스라가 시작한 개혁은 무엇부터 했는가?
바로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기에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구별됨이 없이
오히려 경계해야 할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해서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혼합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에스라는 성전 앞에서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함께 동참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9월 20일에 모여 논의를 했고 개혁을 이루기고 결정했습니다.
어떤 결정을 했는가?
이방 아내와 헤어지겠다는 겁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10월 1일부터 조사를 시작하여 3개월이 걸려 1/1일에 마쳤습니다.
조사를 한 결과 제사장이 18명, 레위인이 6명,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가 4명
그리고 일반 백성이 86명으로 총 114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방 여인과 결혼을 했지만 에스라의 개혁안에 동의하고
아내와 이혼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어찌되었던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여 살다가 헤어지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마지막 절에 기록된 것처럼 자녀까지 있으면 더 더욱 어렵습니다.
잘못은 어른이 해놓고 피해는 자녀가 입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개혁이라고 하지만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혁을 시작한 것은
포로 귀환 후의 정체성과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과 결혼을 금지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만 경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명령을 어기고 잊어버렸기에
이방 문화에 동화가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도 다시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제사장이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가장 먼저 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레위인, 노래하는 자들,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입니다.
앞에서 본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잘못되면 따라가는 사람들도 그냥 하게 됩니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합니다.
 
리더의 타락은 follower의 타락을 가져옵니다.
교회의 타락은 세상의 혼란을 가져옵니다.
리더가 잘 해도 따라가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리더가 잘못하면 그 파급 효과는 훨씬 더 큽니다.
개혁은 물건너 가는 겁니다.
 
에스라는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을 가장 큰 영적인 위기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전 앞에서 통회하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만약 거기에 동참하는 무리가 없었더라면 개혁은 실패하고
오히려 에스라가 물러나야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의 결단을 보고 찔리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은 과감히 결단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정체성을 회복하고 신앙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달콤하지만 그 열매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죄는 단절해야만 합니다.
죄는 누룩과 같습니다.
점점 자라고 오염시킵니다.
그러니 시작할 때, 아직 작을 때 잘라버려야 대가가 적습니다.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가장 뒤로 하고 우선 외적인 조건을 보고 결혼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 좋은데 믿음만 없다고 하면서 일단 결혼을 시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녀의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또한 많은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뜻으로 배우자를 믿게 하려는 확신이 아니라면
성경 말씀대로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결혼하기 전에야 결혼하기 위해 함께 예배 드릴 수 있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달라집니다.
주일에 여행하게 하고, 주일에 일을 만들어서 교회를 가지 못하게 합니다.
교회 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봉사를 하게 되겠습니까?
온전한 예물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갈등을 피하다가 보면, 같이 여행하고 다른 것을 하다가 보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배우자를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믿음을 잃게 됩니다.
에스라가 위기라고 느낀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묵상
우리가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들인가?
영적인 위기를 느끼는가?
동성애, 동성결혼, 마리화나 흡연, 기도 금지, 사탄 숭배 등을 진정한 위기로 여기는가?
죄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회개와 금식을 동반한 기도가 있는가?
신앙에 교회에 세상적인 철학과 가치관이 들어와 있지는 않는가?
결단의 기준이 무엇인가?  말씀인가?
앞서 가는 사람으로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없는가?
리더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있는가?
자신이 불편하고 손해를 보겠지만 바른 것이라면 기꺼이 개혁에 동참하겠는가?
세상 속에서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가는가?
말씀과 다르다면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단호하게 개혁을 하겠는가?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든 조건이 다 마음에 들지만 오직 하나 신앙이 없다면 그래도 결혼하겠는가?
배우자를 믿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 생각하는가?
배우자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가?
믿음의 리더로서 영적 위기를 의식하고 금식하며 기도한 적이 있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진정으로 위기라고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과감히 결단하고 개혁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룩한 정체성을 회복하고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