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삶'

유타대학촌교회 2014. 8. 24. 00:13
v.42 이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v.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v.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v.45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v.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v.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마가복음 (Mark) 15장42-47절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삶'
 
오늘 QT 본문은 마가복음 15:42-47절 말씀입니다.
42-43절은 담대히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한 요셉에 대하여
44-45절은 죽음을 확인하고 예수님의 시신을 넘겨준 빌라도에 대하여
46-47절은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한 요셉과 여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은 오늘날로 오전 9시고
완전히 돌아가신 시간은 오후 3시입니다.
이 날은 금요일이고 6시, 해가 지면 토요일 즉 안식일이기에
율법에 따라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시신은 어떻게 되는가?
 
십자가에 달린 경우 시신에 대한 로마인과 유대인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로마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악한 자들이기에 죽은 후에도
시체를 십자가에 달아 놓거나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신명기 21:22-23절에 의거하여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지만
계속해서 나무에 달아 놓는 것은 그 땅을 더럽히는 것이기에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내려서 장사하도록 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한다면 시간상으로 촉박합니다. (3시간 정도)
문제는 누가 그 시신을 내릴 것인가 하는 겁니다.
아파서 죽었거나 자연사라면 감출 것도, 두려울 것도 없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시기로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더욱이 로마인들은 시신 마저도 쉽게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때에 담대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리마대 출신 요셉이었습니다.
아리마대는 일반적으로 라마다임 산지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라마다임 산지는 구약에 나오는 사무엘 선지자의 고향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1. 존경받는 공회원이다.
2.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대제사장을 비롯한 공회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공회원들이 다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한 것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23:51절을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을 때 '가' 즉 찬성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당돌히, 즉 무서움을 모르고,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담대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왜 그와 같은 행동이 당돌한가?
신성모독죄를 범한 예수님을 동조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그렇다면 공회원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재산 마저도 몰수 당하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빨리 (6시간 만에) 죽으신 것을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에게 확인케 한 후 예수님을 내어 주었습니다.
왜 빌라도가 의아해 했는가?
일반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최소한 하루, 많으면 3일 정도는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 달려있으면 인간적으로 고통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빨리 처형하기 위해 종종 다리 (엄밀히 말하면 무릎 관절)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무게가 밑으로 쏠리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으셨기에 뼈를 꺾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런 다음 확실히 죽은 것을 확인하고 시신을 넘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산 세마포로 예수님의 시신을 싼 후,
자신이 죽으면 매장될 곳인 바위에 판 무덤에 시신을 넣었습니다.
이것 또한 예언의 성취로 봅니다.
 
어디에 그런 예언이 있는가?
'고난 받는 종'에 대한 가장 만은 예언이 담긴 이사야서 53장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53:9)
 
마가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사도 요한은 그 때 다른 공회원인
니고데모도 향료를 가지고 함께 와서 장사를 도왔다고 증언했습니다. (요 19:39)
그도 요셉처럼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요즘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고백하는데
그것을 coming out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범하고서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고백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죄도 아니요 당당한 것인데도
불이익을 당하거나, 왕따를 당할까봐 말도 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들보다 못한 것이 아닙니까?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명예나 인기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손해 볼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지 않겠습니까?
 
공회원이었던 요셉과 니고데모도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지만
예수님께서 골고다에 가실 때 까지 계속 따라갔었고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 동안에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또한 나중을 위해 무덤의 위치도 확인했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또한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멀리 갈릴리에서부터 왔던,
늘 예수님 뒤에서 보이지 않게 섬겼던 여인들입니다.
제자들은 도망갔지만 그 여인들은 도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묵묵히 끝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았고 따라갔던 진정한 제자들이었습니다.
 
묵상
자신이 믿는 사람이라고 어디서든지 당당히 말하는가?
믿음의 사람으로 향기가 나는 삶이라고 여기는가?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무슨 이유인가?
주변에 믿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불이익이나 왕따 당할까봐 그런가?
그렇게 사람의 눈치를 본다면, 진리의 길, 공의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어떤 상황이든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가겠는가?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보는가?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께서 기쁘게 맞을 것 같은가?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아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당당히 믿음을 고백하고 진리의 길을 가는 지,
믿음의 사람으로 향기가 나는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지
돌아보고, 돌이켜 거룩한 날에 하나님 앞에 부끄럼없이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준비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