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4년 7월 31일 목요일 - '누가 소경인가?'

유타대학촌교회 2014. 7. 31. 23:56
v.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v.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v.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v.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v.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v.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v.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마가복음 (Mark) 10장46-52절
 
'누가 소경인가?'
 
오늘 QT 본문은 마가복음 10:46-52절 말씀입니다.
46-48절은 예수님께 부르짖는 소경 바디매오에 대하여
49-50절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겉옷도 버리고 간 바디매오에 대하여
51-52절은 믿음으로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바디매오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실 때에 앞을 보지 못하는 바디매오는
자신이 일을 할 수가 없기에 거지로 지내는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볼 수는 없었지만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모르지만 나사렛 예수여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의 눈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향해 부른 호칭이 중요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이 말은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 나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에 근거해서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며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신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 자체가 바로 예수님이 기다렸던 메시아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겉옷을 버리고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겉옷이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거추장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겉옷은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비싸고 중요한 옷입니다.
전 재산이요 또한 생명과도 연결이 됩니다.
팔레스타인은 사막 기후입니다.
일교차가 심합니다.
낮에는 무척 덥지만 밤이되면 기온이 팍 내려가서 얼 정도입니다.
그 때 이 겉옷이 이불로 대신 사용됩니다.
그래서 신명기 24:12-13절을 보면 가난한 사람의 겉옷을 저당잡은 경우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그 중요한 겉옷을 벗고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이 모습은 자신의 재물을 포기할 수 없어 근심하며 돌아갔던
젊은 부자 관원과 대조가 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 질문에 바디매오는 즉각 대답했습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 또한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에게 하셨던 질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주실 것을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간단한 대답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가 가진 믿음은 무엇인가?
1.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로 알아본 것이고
2. 예수님께 나가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그 믿음이 그를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그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씁니다.
그 사람들이 재물이나 권력을 쥔 사람이라면 더 신경을 쓰겠지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생명을 줍니까?
그 사람들이 자신의 평생을 책임져 줍니까?
물론 몇 번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지만 근본적인 것을 채워줍니까?
그렇게 도움을 받으면 그냥 지나갑니까?
대가를 바라고, 이용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치사하고 위선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권력이든 재물이든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바르지 않으면
그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들어서도 안 됩니다.
진리가 아니면 가지를 말아야 하고,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바디매오는 벌떡 일어나서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 자체를 영광스럽게 여겼고
믿음으로 일어나 나아갔습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구원으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거기에 응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은 누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회자가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신이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3. 믿음의 결단에는 거추장스러운 것은 벗어버려야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바디매오에게는 겉옷이 무거워 걷기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불러주셨는데 지체 할 수가 없어
그 비싸고 중요한 겉옷도 벗어버리고 달려갔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치고 무거운 옷이나, 화려한 옷을 입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볍고 몸에 붙거나 편한 옷을 입습니다.
심지어 단거리를 뛰는 사람들은 0.01초의 기록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머리카락도 밀어버립니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여 기록에 도전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생활에 불필요한 것은 벗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지고 가지 못하는, 영원하지 않는 것들은 하나하나 버려야 합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처럼
썩어서 없어질 것들을 꽉 쥐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4. 예수님을 믿은 후 제자로서 따라가고 있는가 점검하는 겁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잘 따라왔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포기하고 도망갑니다.
지금 눈을 뜬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부르심도 없었지만 바로 따라갑니다.
그는 얻었기에, 메시아로 믿기에 즉시 따라갔습니다.
이제는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제자로서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왜 믿는가?
교회에 왜 나오는가?
그저 자신이 무엇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기복신앙이기에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이유는 바로 죄사함을 통한 구원입니다.
이 본질이 잘못되면 언제든지 포기하고 떠나게 됩니다.
 
자신을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잘못된 믿음으로,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는 잊어버리고 얻을 것만 생각하게 되고
섬기는 것은 잊어버리고 편하려고만 합니다.
기쁨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부담으로, 일로 여기게 됩니다.
처음 사랑을 늘 간직하도록 애써야 시험에 들지 않고
제자로서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영적으로 눈을 뜬 사람의 바른 삶입니다.
 
눈은 떠서 사물을 보는데 영적으로 소경이 되어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초청에 응하지 못하면
불행 중의 불행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묵상
지금 품고 있는 간절한 소망은 무엇인가?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먼저 가는가 아니면 사람에게 먼저 가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두려운가 아니면 사람의 말이 두려운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보장해 주며 영생을 주는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함인가?
자신이 제자로서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지기를 원하면서 예수님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원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없는가?
자신이 믿음의 경주를 하는 사람이라면 벗어버려야 할 거추장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한꺼번에는 못하지만 하나하나 버리려고 애쓰는가?
자신을 늘 말씀 앞에서 점검하고 기도하는가?
육체적으로는 보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소경이라고 여긴 적은 없는가?
어떻게 해야 영적인 소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육체적으로는 보는데 문제가 없지만
영적으로 소경된 삶은 아닌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제자로서 따라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다시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로 따라가기를 애쓰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