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4년 7월 11일 금요일 - '네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유타대학촌교회 2014. 7. 11. 22:18
v.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v.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v.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에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v.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v.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v.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v.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마가복음 (Makr) 4장35-41절
 
'네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오늘 QT 본문은 마가복음 4:30-41절 말씀입니다.
30-32절은 겨자씨 한 알 같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의 말씀에 대하여
33-34절은 제자들에게만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35-41절은 자연마저도 다스리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비유할 때 꼬딱지 만하다 혹은 좁쌀만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겨자씨에 비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을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임한 하나님 나라.
지금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작고 미약하지만
후에는 크게 자라 공중의 새들이 깃들 정도로 크게 된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 겨자씨의 비유는 누가 들어도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그와 같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비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갈 제자들에게
먼저 확실히 알도록 그들에서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러신 다음 밤중에 몰아닥친 큰 풍랑을 잠잠케 하심으로
언젠가 영광스럽게 임할 하나님 나라를 두려움 없이 담대히 전하도록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확신하며 쫓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아야 하지 않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알 수도 없고
믿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세상을 따라갑니다.
그런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과 목표가 있기에
외모를 바꾸고, 출세를 하려고 하고, 성공을 하려고 하고, 인기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있지 않고
의와 평강과 희락에 있습니다. (롬 14:17)
돈으로, 학벌로, 인기로, 성공으로, 외모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보이지 않는 내면을 정결하게 하고자 애써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가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지 불과 270-280년이 지난 후
이루어졌습니다.
기독교는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기 전까지
핍박받는, 보잘 것 없는 종교였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로마 제국을 삼켰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도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미미한 것입니다.
그 날을 사모하는 사람은,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는 변화된 삶을 삽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런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을 주시기 위해
뱃 사람들이 많았던 제자들에게 그들이 두려워할 정도의 풍랑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권능의 팔로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새롭게 가르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치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놀라운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상황이 바뀌니까 마치 큰 일이 난 것처럼
예수님을 깨우며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아인 예수님께서 비록 주무시고 계시지만
그들과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벌벌 떤다면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으시면 어떻게 험난한 세상을 믿음으로 이겨내겠습니까!
 
믿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두려움 없이 당당히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또 다른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주셨습니다.
그 분은 믿음의 사람의 마음에 거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계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은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신비스러운 삼위일체인데
하나님은 세상 끝날까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그러니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고
눈앞에 보이는 환경을 두려워하거나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고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좌우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은 것을 확신하는 것이고
그런 믿음은 세상 풍파를 헤치고 나가 승리케 합니다.
 
묵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 무엇에 더 가치를 두고 사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세상에 집착하지는 않는가?
돈, 출세, 성공, 인기, 명예, 학벌을 추구하느라 언젠가 가야할 하나님 나라는 잊고 지내지 않는가?
그렇게 눈에 보이는 세상에 집착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는가?
말씀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확신하며 꿈꾸는가?
말씀을 보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사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믿음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지금 모든 것이 순조롭기에 자신의 믿음도 굉장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런 연약한 믿음이라고 여기지는 않는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어떤 상황이든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가?
혹시 하나님께서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시며 '네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시지는 않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바로 옆에 예수님께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환경으로 인해 두려워하는 제자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 위축되거나, 눈에 보이는 세상에 집착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영적인 눈을 열어주사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함으로
유혹과 시련이 많은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