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24일 금요일 - '나그네지만 소망이 있는 삶'
유타대학촌교회
2014. 1. 24. 23:05
v.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송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v.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v.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v.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Hebrews) 11장13-16절
'나그네지만 소망이 있는 삶'
오늘 QT 본문은 히브리서 11:8-16절 말씀입니다.
8-10절은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간 아브라함에 대해
11-12절은 믿음으로 자손인 이삭을 얻은 사라에 대해
13-16절은 믿음으로 본향을 향해 나아간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은
한 가지 일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한 가지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기 고향을 떠난 것'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떠날 때의 가족들의 상황에 대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 데라와 아내 사라와의 대화가 없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태어나고 기반이 든든한 곳을 떠나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것도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다는데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된 시작은 바로
부르심에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갈 바를 알지 못한 체.
사라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다고 하셨을 때 비웃었지만
남편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자녀를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나중에는 진짜로 기뻐 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이삭 즉 웃음이라고 지었습니다. (진짜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실 때가
아브라함이 75세, 사라는 65세였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00세와 90세에 믿음의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쉬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약속을 하고 25년을 기다려야 한다면 과연 믿고 기다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때로는 하나님께서 즉각 주실 때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평생을 걸쳐 기다려야 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미래지향적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이 궁극적으로 바란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본향이었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을 본향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본향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런 우리의 부름에 대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대로, 말씀대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기뻐하시겠지만
불순종하고, 의심하고, 불평하고, 죄에 빠진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심이 부끄러울 것입니다.
눈을 들어 주변을 보면 암담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불확실한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위를 보면, 소망이 생깁니다.
언젠가 가야할 본향 즉 천국에 소망을 두면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려고 애쓰게 됩니다.
천국에 간다고, 천국을 바란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합니까?
이 땅의 것은 영원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온 마음을 쏟고
사고 팔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삶이 과연 천국에 소망을 둔, 믿음의 삶입니까?
믿음과 소망이 삶에 배여납니까?
묵상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실 때, 머물라고 하실 때 믿음으로 순종하는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가고 머무르는 것은 아닌가?
지금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정으로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고 있다고 여기는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갈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믿는가?
약속하셨지만 약속의 응답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믿음 포기하지 않고 지킬 수 있겠는가?
혹시 지금까지 몇 년을 기도하지만 응답받지 못해 낙심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가? (생일, 결혼, 졸업, 해외 여행, 기념일, 집 마련, 성공 ......)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께서 계신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가?
거기가 가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라면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천국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말은 그런데 이 땅에 소망을 두고 날마다 불안해하며 살지는 않는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 대해 믿음으로 기도하는가?
하나님께서 그 정도의 능력도 없어보이고 의심하지는 않는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거나 그 전에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려운가 아니면 기쁨이 되는가?
믿음의 부모, 믿음의 형제, 믿음의 선배, 믿음의 지체들로 인해 도전이 되는 것이 있는가?
자신은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자녀라고 여기는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자녀라고 여기는가?
부끄럽다면 무엇으로 인해 부끄러운가?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계속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겠는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는가?
그런 삶으로 본향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기는가?
돌이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용서하시고 기뻐하심을 아는가?
탕자의 비유를 기억하는가?
오늘 하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에 대해 묵상하면서
나그네와 같은 삶이지만 본향인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지
그 소망에 따른 구별됨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눈을 들어 위를 보며 가야 할 천국에 맞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