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 '위로하시는 하나님'

유타대학촌교회 2013. 12. 13. 23:16
v.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v.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할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v.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v.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v.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7장3-7절
 
'위로하시는 하나님'
 
오늘 QT 본문은 고린도후서 7:2-7절 말씀입니다.
2절은 마음으로 바울을 영접함에 대하여
3-4절은 바울의 고린도교회와 성도를 향한 마음에 대하여
5-7절은 바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위로와 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와의 전체적인 부분을 돌아보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도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고린도교회의 분파와 여러 가지 문제를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즉각 갈 수가 없었기에 편지로 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린도전서를 보냈습니다.
그런 다음 급히, 예고도 없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문이 기쁨이 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가 불편하고 불쾌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방문 때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곳을 떠나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다시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에베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지금은 없는 눈물의 편지 (혹독한 편지)를 써서 디도에게 보냈습니다.
바울은 그 편지를 보내놓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혹독한 편지를 받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낙심하지 않을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디도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리는 동안 에베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데메드리오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세공업자가 바울을 고발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이 많들어 파는 아데미 신상과 같은 것이 우상이라고 했기 때문에
장사가 잘 안 되는다는 겁니다.  (행 19:23절 이하)
그래서 바울은 그런 어려움을 피해 마게도냐로 가서 믿음의 사람들을 격려했습니다.
 
정확하게 얼마 정도 마게도냐에 머물렀는지는 모르지만 상당 시간으로 봅니다.
그가 마게도냐에 머무른 것은 에베소의 분쟁이 가라앉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또한 믿음의 사람들을 다시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고린도로 보낸 디도를 만나기 위함입니다.
그런 중에 그는 여러 가지로 힘든 삶이었습니다.
부족한 것도 많고, 불편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행 20:3)
 
그런 외적으로는 핍박이요 내적으로는 두려움과 근심 중에 드디어 디도를 만났습니다.
디도를 통해 바울은 세 가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여전히 바울을 사모하고 있으며
그들이 바울의 편지를 보고 자신들의 잘못을 애통해하고 회개했으며
그들이 바울을 위해 열심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듣고 바울은 위로를 받았고 기쁨이 넘쳤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가장 흔한 이슈가 바로 힐링입니다.
그런데 그런 healing이 제대로 된 것인가?
그것은 일시적인 치유밖에 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치유는 위로부터, 즉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름과 걱정 근심을 잊기 위해 TV 오락 프로그램을 본다고 합니다.
그곳 밖에 자신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주는 곳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나고 나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공허하고 씁쓸하지 않습니까?
완전한 위로와 기쁨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니 힘들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함이 있어야 합니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어서지 못하는 겁니다.
절망하는 겁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세상에 빠지는 겁니다.
감사함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과 비판을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까?
나아집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잠시 어려움을 주시지만 영원히 어려움 가운데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 분은 잠시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것을 믿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교회 공동체에는 온전하고 성숙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괴롭게 하고,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그러니 돌아보면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비판보다는 자랑할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낙심이 되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마귀는 그것을 못하게 합니다.
만약 그렇게 낙심이 되어 믿음을 중단하고 하던 사역을 중단하면
마귀에게 승리를 줄 뿐입니다.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믿음을 끌어올려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묵상
환난이 올 때 어떻게 반응을 하는가?
쉽게 낙심하고, 비판 원망을 하지는 않는가?
그렇다고 문제가 달라지는가?
진리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가는가?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믿는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어떻다고 보는가?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자신은 어떤 지체인가?
초대 예루살렘교회와 같이 나눔과 돌봄과 모임이 있는가?
사랑의 마음으로 책망함도 있는가?
정죄와 징계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영적인 리더에 대한 신뢰가 있는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애통해하고 회개함이 있는가?
자신은 영적인 리더의 기쁨이 되는가?
힘들고 어려울 때 어디서 위로를 얻고자 하는가?
사람을 만나고 파티를 하고 아니면 일을 열심히 하면 잊혀지는가?
어려울수록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가?
혹시 늘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디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하는지 돌아보고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환난과 두려움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이 채워지는 승리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