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3년 10월 5일 토요일 - '자기 확신/기준의 위험'

유타대학촌교회 2013. 10. 6. 01:16
v.1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v.2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 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v.3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v.4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v.5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밭으로 몰아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
v.6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사람들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이라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사르니라.
                                                                                사사기 (Judges) 15장1-6절
 
'자기 확신/기준의 위험'
 
오늘 QT 본문은 사사기 15:1-8절 말씀입니다.
1-3절은 자기 아내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삼손에 대한 말씀이고
4-5절은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기업을 불태운 삼손에 대한 말씀이고
6-8절은 블레셋 사람들의 행위로 인해 다시 보복하는 삼손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삼손, 삼손의 장인,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
모두가 다 자기 확신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 탓으로 돌이고 보복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삼손은 수수께끼 문제로 인해 감정이 상해 결혼식날 그냥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화가 풀릴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 화해의 의미로 염소 새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다음 아내와 자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장인은 삼손이 화가 나서 자기 딸을 버린 것으로 여기고
그 딸을 결혼식에 왔던 30명 가운데 한 사람에게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딸이 있는 방에 못 들어가게 막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삼손은 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이 꼬인 것이 바로 치사한 블레셋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이 아내를 협박하여 문제를 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서 두 마리씩 꼬리를 묶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여우가 아니라 자칼이라고도 함.
왜냐하면 여우는 그렇게 집단으로 몰려다니지 않기 때문)
그리고 그 묶은 꼬리 한 가운데 횃불을 붙였습니다.
그러니 그 많은 여우들이 얼마나 이리저리 뛰며 모든 것을 불태웠겠습니까!
 
피해자는 블레셋 사람들이었습니다.
추수 때가 가까운데 하나도 먹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들은 화가 극도로 났습니다.
그런 다음 이 모든 일이 누가 한 것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들이 알아본 결과는 무엇인가?
삼손의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친구에게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삼손이 화가 난 것이 당연하고
모든 책임은 결국 삼손의 장인 탓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삼손의 장인을 찾아와서 그와 그의 딸을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삼손은 또 다시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복을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삼손이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천 명을 죽였습니다.
 
과연 이 모든 재앙의 발단은 누구 때문인가?
삼손이 블레셋 이방 여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결혼하겠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삼손이 결혼식에서 크게 상품을 걸고 수수께끼를 내지 않았더라면,
결혼식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수수께끼를 이기기 위해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지 않았더라면
삼손의 아내가 협박을 삼손에게 솔직히 이야기 했더라면
삼손이 화가 나서 결혼식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또한 화가 풀릴 때까지 오랫 동안 지내지 않고 빨리 화해했더라면
장인이 삼손이 자기 딸을 미워하야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자기 딸을 친구 가운데 한 사람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 탓으로 돌리고 보복하지 않았더라면
블레셋 사람들이 장인 탓으로 돌리고 죽이지 않았더라면
삼손이 자신이 나실인으로 구별되었고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람인 것을 깨달았더라면......
 
자기 의, 자기 확신이,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옳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작은 오해가 결국 큰 범죄로, 살인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하면 괜찮은 것이고 남이 하면 잘못되었다고 보는 사고방식.
이 정도쯤이야 다 하는 것이라는 세속적인 사고방식.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 경험, 지식 중심.
모두가 위험한 것들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를 경우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가장 근본은, 본질은 기도와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 될 때 세속화도 막을 수 있고
좋지 않은 결과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헤이한지 모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 권력, 섹스, 외모, 성공에 집착합니다.
공의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믿음 순이 아니라 세상 위치에 따라 직분도 남용합니다.
섬김과 희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합니다.
교회 안에서 조차, 교회들 조차 차별합니다.
잘못을 하고도 회개하거나 뉘우치지 않습니다.
받은 은사를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합니다.
기도와 말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받을 복만 생각합니다.
영혼에 대한 관심도 점점 사라집니다.
 
그러니 자기 의로,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교회 안에 자기 뜻에 맞는 사람끼리 끼리 모이고 파가 많아집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지, 어떤 말씀을 하실 것인지 생각하면 됩니다.
관용하고 인내하면 됩니다.
용서하고 베풀면 됩니다.
 
묵상
자신은 어떤 모습인가? 삼손, 삼손의 장인, 블레셋 사람들?
자기는 옳고 남은 무조건 틀렸다고 확신하는 것들은 없는가?
자기 확신이 잘못되었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가?
한 번이라도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거나, 잘못 생각했다거나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있는가?
끝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없는가?
어떤 일이든 가장 먼저 하나님께 묻는가?
일이 생겼을 때에도 하나님께 나가 기도부터 하는가?
자신의 기준에 성경적인가?
자신의 기준에 세속화되어 느슨한 것은 없는가?
다들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좋은게 좋은거라는 말을 자주 하는가?
자신이 하나님의 부름받은 자녀요 일꾼임을 늘 자각하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자기 감정을 해소하는데, 자기 만족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없는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이 무엇인지 잘 아는가?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복하려는 마음은 없는가?
자기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자기 지식으로 매사 하려고 하는 것은 없는가?
위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을 덧입고자 먼저 기도부터 하는가?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있는가?
그런 놀라운 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지 않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기 의로,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 것은 없는지
하나님께 나가 깨닫게 해주실 기도하면서
죄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화목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기에 부끄럽지 않은, 본질로의 회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