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3년 10월 2일 수요일 - '역동적으로 살도록 휘저으시는 하나님의 영'

유타대학촌교회 2013. 10. 2. 23:23
v.19 이에 마노아가 염소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v.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v.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v.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v.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다 하였더라.
v.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v.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사사기 (Judges) 13장19-25절
 
'역동적으로 살도록 휘저으시는 하나님의 영'
 
오늘 QT 본문은 사사기 13:15-25절 말씀입니다.
15-20절은 마노아의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고
21-23절은 마노아로 하여금 영적으로 깨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고
24-25절은 약속대로 삼손을 주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노아는 자기와 대화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자인 줄 알지 못합니다.
그저 한 선지자로 여깁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아이를 갖지 못했던 아내가 아이를 갖는다고 하니
그가 앞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하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좀 더 그를 붙들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는 오히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노아는 반석 위에다가 제물과 소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제물을 올려놓은 반석에서 불꽃이 나와 제물을 태움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자도 그 불꽃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서야 마노아는
자신이 대화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자인 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을 보았기에 죽었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오히려 남편을 영적으로 깨우처 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셨더라면
제물도 받지 않으셨을 것이고,
이런 일들도 보이지 않으셨을 것이고,
또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 속에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 다음 이름을 삼손이라고 지었습니다.
 
삼손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작은 태양' '태양처럼 빛나는' '밝은 희망'의 뜻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태양 같은 힘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의 영향을 받아 지은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그 이름의 뜻이 어찌 되었던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사 그로 하여금 역동적인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게 하셨다는 말은 영어로 하면 stir up 입니다.
한 마디로 그의 삶을 휘젓고 뒤짚어놓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전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역동적인 삶을 살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처음부터 말씀하지 않고 그의 아내에게 말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의 아내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마노아는 그의 말을 직접 듣고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사 그의 눈을 뜨는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믿게 하셨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불신하던 마노아가 하나님의 사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먼저 예배함이 우선임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께 드림이 먼저임을 알려줍니다.
 
이사를 하든, 직장을 옮기든, 사업을 시작하든, 학기를 시작하든
먼저 하나님께 예배 드림이 있어야 합니다.
예물도 자신이 필요한 것을 다 사용하고 남으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구별하여 떼어 놓고 드리는 것이 순서입니다.
이게 잘못되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적거나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자기들끼리는 먹고 마시고 풍성하게 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인색하게 됩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복을 주셨다.
삼손이 갑자기 돈을 많이 벌게 되었습니까?
삼손이 갑자기 뛰어나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삼손이 갑자기 출세했습니까?
아닙니다.
 
삼손이 받은 복은 그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함께 하는 삶이 된 것입니다.
세상적인 복이 아니라 영적인 복입니다.
그렇게 영적인 사람이 되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통해
그의 인생을 역동적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나, 기도를 드릴 때
찔림과 떨림과 뜨거움과 감사와 회개와 결단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똑 같은 예배를 드려도 사람마다 받는 은혜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결단하고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기에 그저 덤덤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말씀으로 인해 기분이 더 나빠져서 나갑니다.
아니면  죄책감만 더 쌓아서 돌아갑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는가?
예배를 드림에 있어 준비와 마음의 자세의 문제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주실 복들을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과
그저 겨우 일어나 허겁지겁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저 의무적으로 혹은 다른 목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
성령 하나님의 휘젓는, 역동적인 삶이 됩니다.
 
묵상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의심부터 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먼저 성령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기를 기도하고 보는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서도 여전히 상황에 따라 의심하는 것은 아닌가?
보아야 믿는가 아니면 믿으면 보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지금 자신의 모습은 어떨 것이라고 보는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안다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이 옳은가?
모든 일에 하나님이 우선인가?
예배를 드리는, 예배에 임하는 자세가 어떤가?
하나님께 드림이 기쁜가 아니면 아까운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세주로 믿으면 성령 하나님을 선물로 받는데 그것을 믿는가?
성령 하나님을 가만히 모시고 있는가 아니면 휘젓는, 충만한 삶을 사는가?
너무나도 미지근한 삶을 살기에 성령 하나님께서 흔드시는 것은 없는가?
영적인 민감함으로 성령 하나님의 휘젓는 역사를 깨닫는가?
성령 충만을 구하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충만을 구하고 받아
휘젓는 역사로 역동적인, 신바람 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