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 '사역을 할 때의 분명한 기준'

유타대학촌교회 2013. 7. 17. 08:12

v.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v.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시지 아니하시는지라

v.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v.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v.10 바울이 환상을 보았을 우리가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v.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v.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성이요

        로마의 식민지라.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사도행전 (Acts) 166-12

 

사역을 때의 분명한 기준

 

오늘 QT 본문은 사도행전 16:1-15 말씀입니다.

1-5절은 바울과 바나바의 더베와 루스드라에서의 선교에 대한 말씀이고

6-10절은 바울이 드로아에서 환상에 대한 말씀이고

11-15절은 바울 일행이 성령에 순종하여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에서의 사역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비록 바나바와 갈라지게 되었지만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더베와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의 평생 동역자가 디모데를 선교에 동참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 공회에서 결정한 4가지 권고사항들을 전했습니다.

그로 인해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은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고

결과 교회는 더욱 안정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교를 함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서 선교를 하는데 자꾸 막히는 겁니다.

그런 일에 대해 그들은 억지로 그들의 계획을 진행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길이 열리는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드로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드로아에 도착한 그날 , 사도 바울은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손짓을 하면서 건너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환상을 그것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인 확신하고

유럽으로 건나가 빌립보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는 로마가 유럽을 지배하기 위해 근거지로 세운 중의 하나입니다.

그곳에서 바울 일행은 다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것은 전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회당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름받았지만

자신들의 동족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당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10 사람이 모이면 회당을 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 회당이 없다는 것은 소수의 유대인들만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할 곳을 찾았습니다.

이것 또한 유대인들의 좋은 종교성입니다.

정결의식 때문에 주로 강가에서 모이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은 강가로 갔습니다.

거기서 동역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멀리 소아시아의 두아디라에서부터 , 옷감 business woman입니다.

이름이 루디아인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자 그와 모두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즉시 그들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바울의 선교에 귀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칭대명사가 바뀌는 것을 있습니다.

선교에 대해  3인칭으로 서술이 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1인칭 복수인 우리로 바뀌었습니다.

바뀐 순간은 드로아에서부터 있습니다. (10)

이후부터는 우리라는 표현으로 것을 있습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말하는 사람 자신이 포함이 사용하는 인칭대명사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을 서술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의사인 누가입니다.

누가가 포함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누가가 드로아출신이라고 봅니다.

 

비록 바울은 바나바와 헤어졌지만

실라라는 귀한, 예루살렘에서 파송한 동역자를 만났습니다.

더베와 루스드라에서는 디모데 만났습니다.

드로아에서는 의사인 누가 만났습니다.

또한 빌립보에서는 옷감 사업을 하는 루디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사역을 기도하며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계획대로 일이 반드시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막힙니다.

막힐 무조건 계획대로 밀어부치기 보다는 잠시 멈추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갔을 그는 환상을 보게 되었고

환상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확신했기에

소아시아에서의 사역을 중단하고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평생 동역자요 후원자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때는 동역자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자서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순종하면 혼자서 부족한 부분을, 혼자서 없는 것을 합력하도록 일꾼을 붙여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때는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도록 애써야 합니다.

때로 일이 풀려가지 않을 때는, 그것이 영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것이라면 자신의 계획은 접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로 순종해서 가야 합니다.

그럴 놀라운 만남의 복이 이어집니다.

 

묵상

선교나 전도를 가장 걸림돌은 무엇인가?

선교나 전도를 피해야 일은 없는가?

자신이 세운 계획이 자꾸 막힐 어떻게 하는가?

주변의 변화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는가?

강권도 이라는 말을 하는데 하기 싫고, 다를 때라도 순종하는가?

억지로라도 순종했을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적은 없는가?

만남을 귀한 복으로 여기는가?

동역자를 귀하게 여기고 함께 사역을 나누는가?

자신이 동역자로 기도와 물질을 후원하는가?

보다는 우리를 내세우는 편인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선교나 전도나 사역이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주장하기 보다 영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도록 애쓰고 순종함으로

귀한 동역자를 얻고 사역의 기쁨과 열매도 거두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