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3년 3월 20일 수요일 - '꿈에 대한 방해는 반드시 있다'
유타대학촌교회
2013. 3. 20. 23:26
v.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v.19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v.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 지를 위라가 볼 것이라 하는지라.
v.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v.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v.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v.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창세기 (Genesis) 37장18-24절
'꿈에 대한 방해는 반드시 있다'
오늘 QT 본문은 창세기 37:12-24절 말씀입니다.
12-14절은 야곱이 요셉을 형들에게 보내는 것에 대한 말씀이고
15-17절은 요셉이 형들을 찾아 도단으로 간 것에 대한 말씀이고
18-24절은 형들이 요셉을 보고 시기하여 그를 구덩이에 가두는 말씀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양떼를 치기 위해 간 곳이 어디인가?'
야곱은 그들이 세겜으로 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어 요셉을 보냈습니다.
왜 세겜으로 간 것에 대해 알고 염려스러워 했는가?
그 이유는 세겜에서 그의 아들들이 그 마을 남자들을 죽이고 노략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딸 디나가 그 가나안 문화를 보고자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부랴부랴 도망치듯 나왔는데 그들이 다시 갔다고 하니 염려가 된 겁니다.
그리고는 요셉을 보내서 형들과 양떼가 잘있는지 보고 보고하라고 보냈습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요셉이 형들과 함께 들에 있었던 이유는
양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형들이 잘하고 있는지를 아버지에게 보고하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형들이 그를 좋게 보지 않았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형들은 세겜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세겜에서 방황했습니다.
그럴 때 한 사람을 만났고 그는 형들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요셉은 야곱에게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형들이 간 곳은 도단으로 세겜에서 북쪽으로 약 25km나 떨어진 곳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먼 훗날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했던 곳입니다. (왕하 6:13)
그러니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가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그 한 사람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도단으로 갔을 때 형들은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동생이기 때문에 익숙한 것도 있겠지만 요셉이 입은 옷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는 형들을 찾아갈 때도 아버지가 주신 화려하고 비싼 채색옷을 입고 갔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쉽게 그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오는 것에 대해 형들은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오기 전에 그를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그들의 말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꿈 꾸는 자가 오는구나'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꿈 꾸는 자가 온다'는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바로 그 꿈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형들이 요셉이 꾼 두 번의 꿈에 대해 엄청 반감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요셉이 형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아버지께 고자질 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들이 요셉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에 완전히 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과연 그 꿈이 이루어지는가 보자며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 때 장남인 르우벤은 반대했습니다.
밉지만 죽이지는 말자는 겁니다.
37:2절 말씀을 통해서 요셉을 죽이고자 적극적으로 주도한 사람들은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여겨집니다.
야곱의 가족은 복잡합니다.
어머니가 네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자매고 두 사람은 그 자매들의 몸종입니다.
야곱은 두 자매도 차별했습니다.
그들의 낳은 자녀들도 차별했습니다.
빌하와 실바의 자녀들은 라헬과 레아의 자녀들과 또 차별을 받았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 그들이 적극적으로 요셉을 죽이려고 합니다. (단, 납달리, 갓, 아셀)
그리고는 요셉을 붙들어 채색옷을 벗시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구덩이에서 쉽게 나올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구덩이는 그냥 땅을 판, 작은 웅덩이가 아니라
암반 즉 돌을 뚫어 깊게 판 후에는 회반죽으로 안을 발랐습니다.
그래서 매끈매끈 하기 때문에 올라 올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구덩이는 사람과 가축에게 물을 제옥해 주었으며
물이 말랐을 때는 죄수를 가두는 임시 감옥으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38:6)
요셉은 흔히들 오실 예수님의 표상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보냄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보냄을 받았습니다.
형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택받았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죽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셔야만 되었고 죽으심으로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셨고
그 결과 세상을 마귀와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묵상
또 다시 좋지 않은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없는가?
아픈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하거나 하고 싶은 욕망은 없는가?
부모가 비록 부족하고 때로 잘못하는 것도 있지만 자녀를 사랑함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미움이 결국 살인이라는 사도 요한의 말씀처럼 미움은 버려야 할 죄임을 하는가?
부모나 형제 친척이나 친구들 그리고 교회 지체들에 대해 여전히 가지고 있는 미움은 없는가?
미움의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자기 보다 더 좋은 것을 가졌기에 열등감 때문인가?
르우벤 처럼 위기에서도 바른 말을 할 용기가 있는가?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에 혼자서라도 바른 길을 갈 수 있는가?
생명은 귀하기 때문에 살인이든 자살이든 하지 말아야 하며 막아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아는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마귀의 방해가 많음을 아는가?
꿈에 대한 방해자가 있음을 알고 계속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애씀이 있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사랑과 미움에 대해 생각해보고
용서하고 화해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앞당기는
승리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