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 '잘못된 선택'

유타대학촌교회 2013. 1. 25. 00:23
v.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v.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v.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v.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v.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v.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창세기 (Genesis) 13:8-13절
 
'잘못된 선택'
 
오늘 QT 본문은 창세기 13장1-18절 말씀입니다.
1-4절까지는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다시 들어온 아브람 일행에 대한 말씀이고
5-13절까지는 아브람과 롯이 갈라지는 말씀이고
14-18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재산이 많은 것으로 인해 분쟁이 생겼다.
아브람로 롯도 재산이 많아지니 그들 가운데 다툼이 생겼습니다.
많지 않을 때는 가깝게 지내다가 재산이 많아지면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싸웁니다.
로또에 당첨되어 이혼하는 경우
돈이 많은 사람들의 형제지간에 유산 때문에 법정 싸움
그렇게 많으면서도 더 가지려고,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편법을 씀
과연 많은 것이 복인가?
 
둘째, 아브람의 변화
아브람은 애굽에서 나와서 다시 첫 번째 한 행동은 벧엘에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애굽에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몰랐던 하나님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롯과 헤어진 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헤브론에 내려간 후에도 다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브람은 점점 영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갑니다.
 
또 다른 모습은 그가 삶에 여유가 생겼다는 겁니다.
많은 재산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자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갈라지지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좋은 땅을 먼저 택하면 자신은 그 반대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연장자이기에 먼저 좋은 땅을 택할 수 있었지만 그는 조카에게 먼저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투는 것보다 화목하기를 원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탐욕, 탐심, 탐식의 사람의 아니라 양보하고 화목케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중심적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 중심으로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살려고 아내마저도 위기로 내 몰았던 사람에서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변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람은 점점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자로 바뀌어 갑니다.
 
셋째, 보기에 좋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롯은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물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기근이 와도 끄떡이 없는 그런 땅이었습니다.
최상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땅은 외적으로는 좋아보였지만 내적으로는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땅이었습니다.
 
롯은 동쪽으로 갔습니다.
동쪽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아담이, 가인이, 그리고 바벨탑 전에 사람들이 동쪽으로 옮겨갔습니다.
또한 롯이 아브람과 헤어진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뿐만 아니라
복의 근원인 아브람과 멀어졌기에 복으로도부터 멀어졌습니다.
아브람은 보는 곳을 택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곳에 머물렀습니다.
 
외적인 조건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고 믿으라고 하지 않고 듣고 믿으라고 합니다.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실수하지 않을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상한 것을 보았기에 음란해지고 폭행까지 합니다.
새롭고 비싼 것을 보았기에 사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보았기에 옮겨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보았기에 먹소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견물생심이라고 합니다.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는 겁니다.
 
보수가 많은 곳이 반드시 좋은 곳은 아닐 수 있습니다.
혜택이 많은 곳이 반드시 좋은 곳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외적인 평가가 좋은 곳이 반드시 좋은 곳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문화가 발달한 곳이 반드시 좋은 곳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외모가 좋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곳인가, 어떤 삶인가 하는 겁니다.
 
묵상
새로운 곳에서 첫 번째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사는 것인가, 꾸미는 것인가?
아니면 인도하신 하나님께 예배부터 드리는가?
늘 옮기는 기준이 눈에 보이는 좋은 조건들은 아닌가?
보이지 않는 비전과 성품과 믿음을 보는가? 그런 눈이 있는가?
가장 먼저는 하나님께 먼저 묻는가?
믿음이 점점 자라는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만족하며 지내는 것은 아닌가?
화평케 하고, 화목케 하는 사람인가?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가 먼저요,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오늘 기도에 관한 말씀은 '매일 생활의 기도' 입니다.
중심 구절은 에베소서 6:18절 입니다.
 
여기에 네 가지 형태의 기도가 나옵니다.
온갖 기도/언제나 기도/늘 깨어서 기도/모든 성도를 위한 기도
 
온갖 기도는 모든 내용의 기도를 말합니다.
회개, 결단, 용서, 자비, 건강, 치유, 승진, 부흥, 진학, 찬양, 긍휼, 물음, 등등
 
언제나 기도는 어떤 정해진 시간만 아니라 하루 온 종일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차 안에서, 휴가 중에도, 병원에서도, 침대에서도 드립니다.
 
늘 깨어서 기도는 정해진 특별한 장소와 시간 뿐만 아니라 항상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새벽 뿐만 아니라 정오에도, 그리고 밤에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몰아서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를 위한 기도는 자기 중심적인, 기복신앙에서 벗어난 기도입니다.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선교사님들 다 알지 못합니다.
어느 지역을 마음에 두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중국, 북한, 탈북자,  등등)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비록 리더가 믿음의 사람이 아니지만 그 주변에는 믿음의 사람들이 들어가기를.
교회의 리더들을, 직장의 상사나 동역자들을, 특별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변화되어 가고 있는지,
어떤 결정을 함에 기준에 그저 외적인 조건으로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처음으로 예배를 드렸던 장소와 감격을 기억하고 그 뜨거운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바른 선택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종하는 믿음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