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2년 11월 7일 수요일 - '납득이 안 가는 일들'
유타대학촌교회
2012. 11. 8. 00:17
v.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v.2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
v.3 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너희가 조롱할지니라.
v.4 나의 원망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냐? 내 마음이 어찌 조급하지 아니하겠느냐.
v.5 너희가 나를 보면 놀라리라. 손으로 입을 가리리라.
v.6 내가 기억하기만 하여도 불안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
v.7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v.8 그들의 후손이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v.9 그들의 집안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v.10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베고 그들의 암소는 낙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
v.11 그들은 아이들을 양 떼같이 내보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춤을 추는구나.
v.12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v.13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스올에 내려가느니라.
욥기 (Job) 21장1-13절
'납득이 안 가는 일들'
오늘 QT 본문은 욥기 21장1-16절까지입니다.
그 중에 1-13절까지만 적었습니다.
21장에서 욥은 소발의 변론에 대해 대답을 합니다.
그는 친구들이 이성과 지혜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분노까지 섞여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친구를 공격하는 것에 대해 반론을 폅니다.
1-3절까지는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을 것을 요청합니다.
4-6절까지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말과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을 합니다.
7-13절까지는 납득이 가지 않는 악인들이 누리는 형통함에 대해 말을 합니다.
14-15절까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들의 교만함을 고발합니다.
16절에서는 악인에게 닥쳐올 불행과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욥의 반론에서 몇 가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듣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기는 좋아하고 대신 듣기는 싫어합니다.
욥이 말한 들으라는 영어로 hear가 아니라 listen입니다.
단순히 흘려버리는 그런 말이 아니라 관심과 염려하는 마음으로 귀담아 듣는 것을 말합니다.
관계의 어려움들은 상대방의 처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옳다는 식으로 밀어부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항상 사람들이 가까이 하려고 하고 존경도 받습니다.
둘째, 납득이 안 가는 현실입니다.
욥의 친구들에 의하면 악인은 하나님의 진노로 망하고 의인은 형통해야 하는데
악인은 잠시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순식간에 망해야 하는데 장수하고
반면 의인은 오랫동안 고통 가운데 지냅니다.
이것이 납득이 안 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분명히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은 멸하시고 의인은 건지시고 지키십니다.
그런에 그런 논리가 모든 사람에게 즉시 적용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혼란스럽습니다.
욥이 드는 예를 보십시요.
악인이 장수하고 권세를 쥐고 떵떵거립니다.
자손 대대로 그런 권세를 유지합니다.
집안에 하나님의 진노도 없고 평안합니다.
하는 사업마다 다 잘 됩니다.
자녀들도 많이 낳고 자녀들도 잘 됩니다.
그러다가 별로 고통도 없이 well dying도 합니다.
그러니 이게 될 소리냐는 겁니다.
오늘날 현실에 맞는 말로 바꾸면
마땅히 벌을 받아 망해야 할 사람들이 계속해서 부를 누립니다.
자녀들은 불법으로 번 돈으로 비싼 과외를 받아 일류 대학에 들어갑니다.
좋은 차를 타고 명품을 입고 다니기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결혼도 잘 합니다.
어려운 때도 취직 걱정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불공평이 있습니다.
새벽 제단을 쌓으며 기도에 힘쓰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귀한 예물을 드리고 시간을 드려 섬기는 일꾼들은
속히 응답하지 않으시고
반면 그저 일 주일에 한 번 예배를 드리거나
그나마 주일이면 이곳 저곳으로 자기 편한 곳에 여행이나 다니거나
아니면 자기 사업을 한다고 바쁜데 돌아다니면서
봉사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물도 아까워서 드리지 않는 사람들은 잘 되는 것 같고.
이게 합당하느냐는 겁니다.
셋째,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욥은 이렇게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공의의 하나님께서 왜 가만히 계시는가 하는 겁니다.
그런 악인들은 형통하게 내버려두시면서 왜 의로운 자신은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런데 그런 악인들은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왜 자신들이 하나님의 길을 알아야 하고 가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전능자가 필요하느냐는 겁니다.
욥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묵상
자신은 말을 잘 듣는 편인가 아니면 말을 많이 하는 편인가?
상대방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며 때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자신의 경험과 아는 것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교훈을 주려하고 결론을 내리는가?
악한 사람의 형통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이 전능자임을 믿고 그 분께 맡기고 그 분의 때를 기다리는가?
불신자나 불순종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소유나 현 위치를 믿고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혹시 악하면서도 형통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뿐만 아니라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가?
오늘 하루,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무엇인가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그 분께 맡기고 평안함을 찾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자신이 가야 하고 져야 할 십자가를 지는
인내와 믿음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