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양식
2012년 8월 9일 목요일 -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
유타대학촌교회
2012. 8. 10. 02:13
v.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v.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Luke) 10장36-37절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던진 질문 속에서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웃이 누구인가를 질문하셨습니다.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옷도 빼앗기고 돈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죽도록 맞아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 곁을 당시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동족이 고통 가운데,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니라 피했습니다.
그들은 죽어 가는 사람 가까이 가면 부정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지금 사역을 하러 가는 길이기에 바빠서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율법에서 말하는 부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위선자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개 취급하는 사마리아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유대인은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여행을 하던 사마리아 사람이 다가와서 물과 기름으로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알몸에 상처가 난 자신을 부축하여 자신이 타고 가던 짐승에 태워
가까운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먹이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떠날 때에는 두 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을 주고는
혹시라도 부족하면 다시 지나갈 때 더 줄테니 돌봐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 자신을 시험했던 율법사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대답은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였습니다.
이 대답에도 이 사람은 사마리아인을 미워하여 그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입니다'라고 답하지 않았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신명기 6장4-9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저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도 없이 그저 선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웃이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웃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을 하고 정합니다.
이웃은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꼽습니다.
율법사와 같은 종교적인 사람은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누가 내 이웃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이웃이라고 하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바르게 응답하는 사람이 이웃입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필요한 사람을 찾기 전에
자신이 필요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다 좋은 친구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 좋은 친구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학벌도, 재력도, 권력도, 외모도, 가문도 좋은 사람을 좋은 친구로 여깁니다.
자기는 가만히 앉아서 도움만 받겠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친구로 관심의 대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귀찮아 하고 우습게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는 좋은 친구를 가졌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사람이 좋은 친구가 되겠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친구를 달라고 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도움을 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자기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셨을 때 권세자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귀족 가문이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기득권자들과 사귀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 많이 가진 사람, 많이 높은 사람, 많은 인기가 있는 사람)
예수님은 소자 즉 약하고 아프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자 즉 작고 약한 자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진정한 이웃입니다.
묵상
자신이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나 이웃입니까?
아니면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친구나 이웃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합니까?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기꺼이 도움을 줍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세속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까?
오늘 하루, 자신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이 좋은 친구요 이웃인지 돌아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요 이웃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알림>
교회 홈페이지가 utahchurch.org로 바뀌었습니다.
금년도 교회 목표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순종의 해'입니다.
금요일 7시에는 경배와 찬양 예배가 있고 이어 청년부 소그룹 모임이 있습니다.
토요일 7시에는 아침기도회가 있습니다.
이번 주 암송구절은 요한복음 11장4절 입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