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v.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v.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v.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v.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v.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v.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v.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v.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v.15 예수께 이르되 그 귀신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마가복음 (Mark) 5장6-15절
'양립할 수 없는 두 나라'
오늘 QT 본문은 마가복음 5:1-20절
말씀입니다.
1-8절은 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9-13절은 귀신이 돼지 떼에 들어가 몰사하는 것에 대하여
14-20절은 귀신을 쫓아낸 사건으로 인한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비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동시에 미약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넓어지고 있는지를
귀신을 쫓아내는 사건을 통해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거라사인 지방은 갈릴리 동편의 데가볼리 지역의 한 동네입니다.
이곳은 갈릴리 동편이요 요단강 동편으로 주로 이방인들이 많은 사는
동네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를 사육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도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귀신 하나만 있어도 힘든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귀신들이 들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힘은 얼마나 센지, 쇠사슭로 묶어도 풀 정도였습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까 큰 소리를 질렀고
심지어 자기 몸을 돌로 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살 수가 없고
마을 입구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동네를 지나가시는데 그 사람 안에 있는 귀신이 알아보고
먼저 뛰어와서 절을 했습니다.
절을했다는 단어는 개가 주인이 오면 꼬리를 흔들며 납작엎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존재인 귀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고
엎드려 굴복하고 경배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직 자신들이 무저갱에 들어갈 때가 아닌데 왜 오셨는가,
왜 자신들을 괴롭게 하시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 귀신들을 향해 이미 나오라가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이 그렇게 간청한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악한 귀신이 사람을 괴롭히는데 그냥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귀신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었는가?
군대라고 말했습니다.
군대는 일반적으로 군단으로 약 6,000명의 보명을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한 사람에게 귀신이 6,000개나 들어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귀신들이 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
귀신들은 자신들이 이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이 귀신들은 더러운
영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부정한 동물로
보는 돼지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방 지역이라 영적으로 자신들을
쫓아낼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거기서 편하게 지내려고 자신들을 내보내지
말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차라리 돼지 떼에 들어가겠다고 했고
예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그 순간 돼지들도 자신들에 이상이 생기자 놀라서
그냥 바다로 돌진해서 무려 2천여 마리가 죽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돼지 떼는 죽었지만 이 사람은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옷을 입고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반면 돼지를 치던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경제적인 손실을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예수님을 추방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께 정중하게 자기 마을을 떠나시기를 요구했습니다.
더 이상 또 다른 손해를 보기가 싫다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보면서도, 놀라면서도, 두려워하면서도
그 분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손해 보거나 불편함을 견딜 수 없기에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반면 귀신이 들렸다가 나음을 입은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따라오지 말고 집으로 가서
그가 경험했던 일들을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보여주면 오히려 귀신의 역사라고 하면서 시기하고
질투하기에
고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이방 지역에 있는 사람은 그럴 염려가 없으니
자신이 행하신 일을 본 그대로, 경험한 그대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렇게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겨자씨와 같이 언젠가는 창대케 됨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로 인해
사탄의 나라는 쫓겨나고 패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를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서는 곳에는 사탄의 나라는 패합니다.
지금도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서는 귀신이 쫓겨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귀신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떱니다.
아직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지 않아,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지역이 있어
마귀가 세상을 흔들고 있지만 그들은 궁국적으로 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그런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은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화와 문명과 과학과 의학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고치지 못하는 병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과거에는 없던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습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가?
마음에 평안이 없고 걱정 근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죽은 이후에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으니,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니
더러운 영이 거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면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거라사인 지방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을 얻고 복을 받는 것은 좋지만
자신들이 손해보거나 부담스러운 것은 하지 않으려고
배척합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계시록 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7 교회들 중
제일 마지막인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
그러면서 다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네가 이같니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6)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고침받은 사람은 확실한 체험을
간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가족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가까운데서 부터 시작을 합니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간증만큼 확실한 전도도
없습니다.
귀신은, 악한 영으로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악한 영인 귀신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 떼에 들어가겠다고 한 것은
어둠으로 상징되는 죄가 사람들을 어둠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파리가 더러운 곳을 좋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귀로 상징되는 바알세불은
문자적으로 '파리의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기에, 마귀의 노예가 아니기에
더러운 곳에, 어두운 곳에 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곳에 가면 머리가 아픕니다.
더 이상 재미가 없고 싫어지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서게 되면 마귀의 나라가 물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와 마귀의 나라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서는 곳에는 마귀의 나라는 패하여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전쟁에서 이기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마귀가 완전히 물러나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가?
아닙니다.
한 순간에 그런 완전한 승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죄의 뿌리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 죄의 뿌리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갈등하며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궁국적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승리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하고, 성령 하나님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묵상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볼 수 있는가?
자신이 바로 그런 확실한 증거가 아닌가?
전과 현재를 비교해 볼 때 놀라운 변화가 있는가?
그런 놀라운 변화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하는가?
마귀로 대변되는 것이 바로 어둠인데, 어둠을 좋아하지는 않는가?
죄로 인한 옛 습성은 벗어버리고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날마다 악한 영들과 싸움이 시작됨을
아는가?
무엇으로 영적전쟁에서 이기려고 하는가?
혹시 미지근한 신앙인은 아닌가?
자신이 이익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하지만 부담스럽고 손해보는 것에는 뒤로 빠지는 것은
없는가?
예수님을 믿고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기꺼이 좇아가려고 하는가?
자기의 영이 자유한가?
만약 늘 눌려있다면 무엇 때문에 영이 눌려있다고 생각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들어도 귀신이 벌벌 떠는 사실을 알고 이름을
선포하는가?
최후 승리를 믿고 하나님 편에 서려고 애쓰는가?
오늘 하루, 거룩한 성일을 앞두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자로
최후 승리를 믿고 더려운 곳을 피하고, 더러운 영과
싸움으로
거룩한 삶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굳건히
세워가는
복된 자녀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