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v.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v.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v.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v.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v.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v.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이 때문니이다 하는지라.
v.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v.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사무엘상 (1 Samuel) 1장10-18절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확실한 소망'
오늘 QT 본문은 사무엘상 1:1-18절 말씀입니다.
1-6절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가 당하는 고통에 대하여
7-11절은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나에 대하여
12-18절은 오해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평안히 돌아간 한나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하의 저자는 누구인지 모릅니다.
제목이 사무엘로 붙은 것은 가장 중심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는 사사기의 후기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때였습니다.
또한 이 책에 분열왕국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솔로몬 왕 이후에 쓰였을 것으로 봅니다.
마지막 사사요 첫 선지자로 꼽히는 사무엘의 탄생은
자녀를 낳지 못하는 한 여인의 고통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비록 에브라임 산지에 살지만 에브라임 지파 사람은 아닙니다.
역대상 6:22-28절, 34-35절을 보면 그가 레위 지파의 그핫 계열의 후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매년 율법에 따라 (신 12:5-7절)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실로에 가서
절기를 지켰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아내가 둘 있는 것은 아마도 첫 부인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둘째 아내를 두었고 둘째 아내 브닌나로부터 자녀를 얻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첫 부인인 한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한나를 더 사랑했지만 그것 때문에 더 큰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그런 한나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15절)
집에 있으면 '아이도 못낳는 주제에'라고 빈정대고 약을 올리는 브닌나로 인해 고통스럽기에
한나는 절기가 되면 남편을 따라 실로에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자녀가 없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고 믿기에
갈 때마다 여호와의 전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냥 기도가 아니라 마음을 쏟아붓는, 통곡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당시 제사장은 엘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가 많고 눈도 나쁘고 몸도 비대하여 직무를 잘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두 아들들이 대신 직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는 한나가 술취한 여인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술을 끊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오늘날 우리가 듣는다면 얼마나 낙심이 되겠으며
또 얼마나 목회자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겠습니까?
자신은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데, 술취했다고 하고 술을 끊으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시험받기 딱 좋은 말입니다.
또한 목회자에 대해 수군수군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엘리 제사장은 오해를 인정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제사장의 오해와 섭섭함을 다 잊고
그 말씀대로 될줄 믿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었기에 다시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브닌나가 자신을 갈구어도 흥분하지 않고 평안히 지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역시 세상에서 조롱과 비난을 받습니다.
심지어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습니다.
세상 마지막이 가까워지기에 마귀의 공작으로 점점 핍박의 강도가 세 질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고통 속에서도 어디에 하소연할 때가 없다면, 의지할 때가 없다면 얼마나 낙심이 됩니까!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의지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 고통 중에서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할지라도 믿음으로 구하지 않으면
의심하면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믿음의 기도가 기적을 보게 합니다.'
믿음의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합니다.
믿음의 기도가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묵상
브닌나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가지지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괴롭히지 않는가?
(돈, 학벌, 외모, 차, 명품 등등)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인해 손해보는 것은 없는가?
세상이 갈수록 반기독교적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런 것을 볼 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점점 가깝다고 여기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재림을 준비해야 하겠는가?
억울하고 답답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세상적인 방법으로 술을 마시거나 여행을 가거나 하지 않는가?
가장 먼저 하나님께 내려 놓고 기도하는가?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부으며 통곡하고 기도한 적이 있는가?
영적인 리더로부터 말도 되지 않는 오해를 받는 적이 있는가?
그럴 때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 이후 계속해서 신뢰가 가는가?
아니면 믿음의 리더로 인정하고 은혜를 구하는가?
하나님의 돌보심과 응답하심을 진실로 믿는가?
남편이든 아내든 자녀든 친구든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기도하면서 의심하는 것은 없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믿음으로 기도하여
평강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