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륵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기같이 뛰리라.
말라기 (Malachi)
'그 날에는 구별됨이 있다'
말라기서는 구약의 제일 마지막 책입니다.
제일 마지막에 있어서 말라기가 아니라 말라기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나의 사자' (messenger)라는 뜻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BC 432-425년 사이라고 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를 마치고 돌아온 이후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성전이 다시 지어졌습니다. (스룹바벨 성전)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은 느혜미야와 관련이 됩니다.
느혜미야가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와서 성전 벽을 건축한 때는
BC 444년 경입니다.
느혜미야는 성전 벽을 재건한 다음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갔습니다. (432년)
그러다가 다시 425년 경 돌아왔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의 상황이 말라기 선지자의 메시지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느혜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 사이,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했을 것으로 봅니다.
1-2장은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이지만
3-4장은 희망과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1-2장을 통해 말라기 선지자는 리더와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합니다.
각각 4가지 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리더들이 저지른 범죄들은 무엇인가?
1. 불경건한 삶 (1:6절)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본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했습니다.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격이요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제 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었습니다.
2. 헌신이 없는 제사 (1:7-8절)
가장 귀하고 좋고 깨끗한 것으로 드려야 할 제사에
더러운 떡과 병든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쓰다 남은 것이 아닙니다.
아까워서 겨우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겁니다.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드림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간을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드린다는 것에는 마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형식적이고 아까워하고 동정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드림이 아닙니다.
가장 헌신되어야 할 리더들이 그런 모습이 없다는 것은
당시 얼마나 영적으로 나태하고 타락했는가 알 수 있습니다.
3. 사역의 변질 (1:14절)
하나님 앞에서 사역을 하는 것은 특권이요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아니라 돈을 벌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는 잘못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 가운데 좋은 것은 자신들이 빼돌리고
자신이 가진 것 중에 흠이 있고 병든 것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은 삯꾼과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 섬김을 돈벌이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목적도 구원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복받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섬김의 본질이 변질된 것입니다.
동기가 잘못된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들은 최소한 돈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위해 일한다거나 돈을 밝힌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합니다.
4. 본이 되지 않음 (2:7-8절)
리더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잘 지킴으로 본이 되어야 하는데
리더들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사람들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리더들이 본이 되지 않아서 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싸우고, 자기 힘을 키우기 위해 싸우고.
돈 문제가 투명하지 않고.
그래서 젊은이들은 본받을 만한 리더가 없다고 합니다.
물론 리더가 없다고 떠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옳은 일을 할 사람이 없을지 모릅니다.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도전을 받고 진정한 리더가 되면 됩니다.
그러나 리더의 잘못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범죄는 무엇인가?
1. 형제들과의 불화 (2:10)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이웃과 형제 자매가 됩니다.
그 사실을 얼마나 잊고 지내는지요.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믿는 가족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헐띁고 욕하고 비방하고 시기하는지요.
화기애애한 것이 아니라 살기등등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본이 되며 복음이 전파되겠는가?
2. 이방인과 결혼 (2:11절)
이것은 느혜미야서에도 나옵니다.
리더들이 이방 사람들과 결혼에 더 앞장섰습니다.
왜냐하면 인맥을 만들고 더 큰 부와 권력을 쥐기 위함이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방 풍속이 들어오는 것이고
심지어 자기 나라 말은 못하면서 다른 나라 말은 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3. 타락한 양심 (2:17절)
사람들이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인가?
진리를 왜곡하는 겁니다.
옳은 것은 틀렸다고 하고 틀린 것은 옳다고 하는 겁니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고, 가치관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오늘날을 포스트모든 시대라고 합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절대로 없다'고 확신하는 세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대해 강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강요 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마찰이, 갈등이 생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불편하면 쉽게 '그거 틀렸어, 그거 잘못되었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기준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절대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한 마디로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세대가 바로 오늘날인데
이미 지금부터 2400여 년 전에도 있었던 현상입니다.
4. 십일조를 어김 (3:7-12절)
말라기 선지자는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훔쳐간 도둑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왜 자신들이 도둑이냐고 뻔뻔스럽게 반문했습니다.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사람들 앞에서는 십일조를 내는 것처럼 했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님을 아시고 심지어 도둑이라고까지 표현하셨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에 대한 책임이 강조가 되는 것이 바로 시간과 물질입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고 십일조를 내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실 때에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을 시험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일조를 드려서 복을 받는지 못 받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상 원리입니다.
실제로 해보라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범죄한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대로 순종하며 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억하시고 구별하사 기념책에 기록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날에, 그들을 아끼시고 구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반드시 구별됨이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
알곡과 쭉정이
양과 염소.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
모든 말과 행동은 기록이 되고 (생명책, 기념책)
거기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있습니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불에 타는 볏짚처럼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겸손하고 순종하며 선을 행한 자는 치료하는 광선 즉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십니다.
그 분 앞에 나오면 어둠이 물러나고 치유함과 회복을 얻습니다.
이것은 마치 레이저와 같습니다.
몸 안에 있는 돌을 깨뜰리고
암세포를 죽이고
점을 빼고
오직 빛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은 영생의 복을 누립니다.
또한 빛의 자녀가 되어 세상 어둠을 물리치게 됩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 나중에는 큰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날을 두렵고 떨림으로
늘 빛 가운데 거하며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두가 리더인데 리더로서 부끄러움이 없는가?
예수님을 믿었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바뀌어 가고 있는가?
바뀌려고 하는 갈망이 있는가?
리더가 잘못되면 따라오는 사람들이 더 큰 혼란을 겪지 않겠는가?
오늘날 본받을 만한 리더가 없다는데 자신이 그런 리더가 되면 안 되는가?
없다고 탓만 하고 있으면 달라지는 것이 없기에 자신이 그렇게 해야 하겠다는 부담이 있는가?
자기 혼자 나선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 위안하지 않는가?
세상이 다 그렇게 간다고 스스로 변명하고 합리화하지 않는가?
정말로 혼자서는 불가능한가?
지금도 세상 어느 곳엔가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구별된 사람들이 있음을 아는가?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임을 깨닫고 그렇게 드리는가?
시간과 물질을 온전히 드리는가?
십일조는 율법이 생기기 전,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것인줄 알고 있는가? (멜기세덱)
물질은 드림은 자신을 드리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가? (믿음의 표현)
마지막 날에는 이 땅에서 말과 행위에 따라 심판이 있음을 분명히 믿는가?
그 날에 어느 편에 설 것 같은가?
천국에 간다면 하나님께서 무슨 기준으로 받아주실 것으로 확신하는가?
착하고 충성된가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가?
빛의 자녀로 어둠을 밝히고 있는가?
오히려 어둠에 동화가 되는 것은 없는가?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믿는가?
그러면 성경은 무엇인가?
오늘 하루,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를 묵상하면서
그 당시나 오늘날이나 별 차이가 없음을 알고
치료하는 광선인 예수님 앞에 나아가 치료받고 깨끗함을 받아
절대적인 진리가 없고, 하나님도 계시지 않다고 하는 세상 속에서
진리를 드러내는 빛의 자녀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