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3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v.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v.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v.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v.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하니라.
v.8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이르되
우리가 한 사람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말며
한 사람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v.9 우리가 이제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를 뽑아서 그들을 치되
사사기 (Judges) 20장3-9절
'뻔뻔스러움과 무지'
오늘 QT 본문은 사사기 20:1-18절 말씀입니다.
1-7절은 레위 사람이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을 이스라엘 지파에게 고발한 말씀이고
8-11절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사람들이 기브아 사람들을 치고자 준비하는 말씀이고
12-18절은 이스라엘 총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공격에 맞서는 베냐민 지파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지막 사사인 삼손이 죽은 이후, 이스라엘의 영적인 타락은 계속되었습니다.
17-18장은 미가라는 한 개인의 집에서 시작된 우상숭배가
어떻게 단 지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모세의 후손인 한 레위 사람의 타락도 보여줍니다.
이어 19-21장은 한 레위 사람이 첩을 두었고 그 첩으로 인해
이스라엘 지파 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부름받은 레위 사람이 첩을 두었습니다.
그 첩이 성폭행을 당해 죽었는데 그 첩의 시신을 열 두 도막을 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12지파)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거기서 레위 사람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보고합니다.
그런데 그 상황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100% 맞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잘못 즉 자신이 첩을 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고
그저 기브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자기 첩을 성폭행하고 죽였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상은 기브아 사람들 중의 불량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앞서
어떻게 그 첩이 그들의 손에 넘겨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도 너무 감정적입니다.
우선 그들 또한 레위 사람이 첩을 가진 것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말을 듣고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번도 주변 나라의 침공에 대해 연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에 이 사건을 두고는 한 마음이 되어 모여 공격하려고 합니다.
레위 사람이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모두가 뻔뻔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겠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한 악행은 돌아보지 못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 제대로 상황파악도 하지 않고 그저 죽이고자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사사기 저자가 계속하여 언급하는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는' 모습입니다.
레위 사람을 통해서 보는 것은 자기 합리화의 모습이요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해서 보는 것은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눈의 티끌을 보고 비판하는 모습입니다.
또한 감정에 치우쳐, 상황에 대해 자세한 관찰도 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이 한 마음이 되어야 했을 때는 가나안 사람들과 싸울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것은 하지 않으면서 동족과의 싸움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순을 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귀와의 영적전쟁입니다.
영적으로 타락하면 도덕적으로 타락할 뿐만 아니라
힘과 재물과 시간과 은사를 헛 된 것에 허비하게 됩니다.
그 결과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갑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묻자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그들은 죄를 범한 자들을 죽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누가 올라갈 것인지에 대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18절)
이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렇지는 않습니까?
시작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은 정해놓고 하나님께서 그저 자신의 원대로 해주기를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라면 미신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잘못된 질문이 잘못된 답을 얻는 것처럼
잘못된 기도는 잘못된 응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바른 믿음의 공동체는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연합하고
매사 신중하게 분별하는 공동체입니다.
한 마디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공동체입니다.
묵상
자신에 대한 잣대와 다른 사람에 대한 잣대가 같은가?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을 보기 보다 먼저 자신의 큰 죄부터 보는가?
다른 사람 탓이 아니라 자신 탓이라고 할 수 있는가?
늘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비판하지 않는가?
공동체 사이에 생긴 문제에 대해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가?
우리의 힘과 지혜와 능력과 재물과 시간을 어디에 쏟고 있는가?
세상을 향해,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하는가 아니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는가?
세상을 향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없는가?
하나님의 공의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자기 의로 판단하는가?
교회 공동체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무엇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없다고 여기는가?
늘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이야기에만 열을 올리지는 않는가?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한가?
가장 먼저 자신이 왕같은 제사장임을 알고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산다고 자부하는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면, 도덕적으로 타락이 따라옴을 인식하는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어떤 내용인가?
하나님께 바른 기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언제 하나님께 기도하는가?
바른 기도인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인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먼저 자신부터 돌아보고
변명과 자기 합리화와 남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자신이 거룩한 천국 백성으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합당한 삶으로 돌이킴으로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향기가 나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