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33 그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v.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v.35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블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v.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v.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니이다 하였더니
v.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그릇에 가득하더라.
사사기 (Judges) 6장33-38절
'부르실 때 감당하도록 하시는 하나님'
오늘 QT 본문은 사사기 6:33-40절 말씀입니다.
33-35절은 미디안의 침공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한 기드온에 대한 말씀이고
36-38절은 전쟁을 앞드고 양털로 하나님의 확신을 시험하는 기드온에 대한 말씀이고
39-40절은 한 번 더 양털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기드온과 그대로 행하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기드온은 우상을 타파한 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실히 체험을 했습니다.
주민들이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우상들을 타파했기에 큰 일을 날 줄 알았지만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체험이 있고나서 드디어 미디안과 그 주변 나라들이 연합하여 공격해 왔습니다.
전 같았으면 소심했던 기드온이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숨기도 숨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고 과감하게 군대를 소집하는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으려고 했던 주민들이 먼저 왔고
그 다음에는 므낫세 지파가 왔고
그 다음에는 주변 다른 지파들에게도 도움을 청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180도로 변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약한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신약으로 말하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 성령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임하셨다고 했는데
여기서 임하셨다는 말은 둘러싸다, 덮다, 입히다는 뜻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담대함과 용기가 생긴 겁니다.
하나님께서 소심하고 나약한 기드온을 부르시고 그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신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약함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능력은 주실 것이기에 찾아오신 겁니다.
그른 하나님의 채우심과 주심을 안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부름을 받았을 때, 예라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기드온은 부르심을 받고 의심했지만 한 번의 경험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전쟁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을 하려고 보니 상대방이 너무 강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 시험은 양털 시험이었습니다.
자신이 양털을 타작마당에 둘 것인데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부르신 것이 확신하다면
주변은 마르고 양털만 마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하셨습니다.
그러면 믿고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한 번 더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노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요구했습니다.
주변은 모두 이슬로 젖고 양털만 마르게 해 달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그가 원하는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믿음이 연약하고 의심하는 자를 쓰셨습니다.
그의 믿음이 확실하게 되도록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하시고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향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기드온에게는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구도 기드온과 같이 하나님을 시험해도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시험을 허락하시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허락이 달라진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알지 못하기에, 우리의 갈 바에 대해 물어볼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능력은 주어집니다.
그러니 자신의 능력이 없다고, 자신이 경험이 없다고, 자신이 가진 것이 없다고
불순종 하는 것은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실 때가 가장 적합한 때요, 순종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믿으니 자신의 생각보다 크면 못 한다고 쉽게 말합니다.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을 자신의 틀에 가두고 자신의 능력밖에 못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라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것밖에 생각 못하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밖에 못하시는 하나님이라면 그 분이 하나님 되시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분의 생각과 길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이사야 55:8-9절)
그 사실을 진정으로 믿을 때 우리의 생각은 접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다)을 믿으면 되고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을 믿으면 되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
기드온에게 성령 하나님을 입혀주신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그 사실을 알고 믿어 의심치 않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묵상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없는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벽이 크면 클수록, 높으면 높을수록 의심도 비례하지 않는가?
순종하면 능력은 따라옴을 아는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이미 수 차례 경험하고도 여전히 의심하는 것은 없는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가?
하나님을 너무나 작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약한 자신을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자신의 의심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여전히 불순종하는가?
하나님 나라가 자신의 노력과 머리로 이루어진다고 보는가?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충만히 느끼는가?
성령 하나님의 음성이 계속 들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거부하지 않는가?
기드온과 같이 표징을 구한 적은 없는가?
시험했음에도, 의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거룩한 주일을 앞두고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주시는 말씀에 대해 순종하지 못한 것은 없는지
여전히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모시지 못하고 자신을 믿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믿음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준비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