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오늘의 양식

2013년 4월 2일 화요일 - '코람 데오'

v.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v.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v,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v.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v.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 (Genesis) 39장19-23절
 
'코람 데오'
 
오늘 QT 본문은 창세기 39:11-23절 말씀입니다.
 
11-12절은 요셉이 성적인 유혹을 뿌리치는 말씀이고
13-15절은 요셉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말씀이고
16-20절은 요셉이 감옥에 갇히는 말씀이고
21-23절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적인 유혹은 뿌리치기가 어렵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미인계, 미남계를 써서 정보를 빼냅니다.
갈수록 성적인 유혹과 타락은 많아질 것입니다.
오실 메시아의 예표라고 보는 요셉은 그런 큰 유혹을 물리쳤던 사람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계속해서 성적인 유혹을 할 때 요셉은 피했습니다.
그 여인이 있는 곳에는 아예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은 집요했습니다.
계속해서 추파를 던지고 노골적으로 유혹합니다.
요셉이 유혹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 여인은 더 유혹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 여인이 (Mrs. 보디발) 아예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요셉을 적극적으로 유혹했습니다.
요셉이 도망할 수 없을만큼 강하게 그의 옷을 붙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셉은 옷을 벗어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여인.
요셉을 향해 한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있는 요셉의 옷을 가지고 요셉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당시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여인은 자신의 남편마저도 비난을 합니다.
'당신이 데려온 저 히브리 종'
 
그런데 보디발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감히 종이 주인의 아내를 넘본다는 것은 사형입니다.
그런데 화를 냈지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은 일반 감옥이 아니라 정치범들을 가두는 감옥이었습니다.
 
이런 반응을 볼 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의 아내가 평소에도 행실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가 요셉의 신실함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셉은 바로 죽었어야 합니다.
만약 죽는다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셨던 꿈은 어떻게 됩니까?
 
억울하게 감옥게 갇힌 요셉은 또 다시 거기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간수장이 감옥에 대한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성실한 것도 있겠지만 성경은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매'
'하나님께서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39장에서 계속 반복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를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요셉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사 형통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만약 요셉이 다르게 마음 먹었으면 현실적으로 확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선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를 판 형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길을 열어주셨다고 오인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1. 세상에는 성적인 유혹이 항상 있다.
2.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고생할 수 있다.
3. 성적인 유혹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4.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형통함을 받아도 고난은 받을 수 있다.
5.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
6.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아신다.
7.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만사형통 하는 것은 아니다.
8.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사람들과 관계가 좋다.
       신임을 받고, 칭찬을 받고, 눈에 들게 한다.
9. 세상에는 누명을 씌우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 것처럼,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는 사람들.
       의로운 척, 베푸는 척, 자비로운 척, 깨끗한 척 하면서 교묘히 사람을 옭아맨다.
10.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께 함께 하심을 확실할 때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11. 어려울 때도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12.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 편법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13. 고난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온다.
14. 하나님 보시기에 잘하고 있어도 고난은 올 수 있다.
15. 믿음이 있다고 해서 고난에서 금방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묵상
자신이 요셉처럼 성적인 유혹을 당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도망갔을까 아니면 기회로 여길까?
억울함을 당할 때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반응은 어떨 것이라 생각하는가?
자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확신이 있는가?
그런 코람 데오의 확신이 자신을 어떻게 반응하게 하는가?
정직하게 믿음으로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온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고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떤가?
예수님도, 욥도 고난을 받았는데 자신은 예외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 믿음의 검증 기간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대인관계가 좋은가?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칭찬을 받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관계가 깨지는 것은 없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항상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심을 알고 유혹에서 떠나 거룩함을 지키고
그로 인해 대인 관계가 좋아지고 형통함을 받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알림>
금년 교회 목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질화하는 해' 입니다.
 
'오늘 QT 하셨습니까?'
개인의 삶에, 그리고 어떤 모임이든 그날의 QT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화요 캠퍼스 모임이 union cafeteria에서 11:50분에 있습니다.
화요일 7:30에는 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저녁 6:30분에는 알파코스 모임이 있습니다.
 
수요일 7시에는 리더 모임이 있습니다.
 
금요일 7시에는 찬양 예배가 있습니다. 이어 청년부 소그룹 모임도 있습니다.
 
토요일 7시에는 아침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주일에는 정기 제직회가 있습니다.
 
이번 주 암송구절은 마태복음 28: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