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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3년 2월 21일 목요일 - '속임수로 받는 축복이 옳은가?'

v.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v.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v.20 아식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v.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v.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v.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창세기 (Genesis) 27장18-23절
 
'속임수로 받는 축복이 옳은가?'
 
오늘 QT 본문 말씀은 창세기 27:1-23절 말씀입니다.
 
1-4절은 에서를 축복하려는 이삭에 대한 말씀이고
5-10절은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하려는 리브가에 대한 말씀이고
11-17절은 어머니 리브가의 말에 따라 별미를 가지고 이삭에게 가는 야곱에 대한 말씀이고
18-23절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받아내는 야곱에 대한 말씀입니다.
 
25장에 의하면 분명히 리브가와 이삭은 큰 자인 에서가 작은 자인 야곱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이삭은 활동적인 장남 에서를 더 사랑했고
반면 어머니 리브가는 말씀을 기억하고 차남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헷 족속의 딸들과 결혼하여 그들에게 근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남인 에서에게 복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우연인지 고의인지 리브가가 듣고 야곱에게 복을 돌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리브가는 이삭의 말부터 (여호와께 복을 받는다) 바꿉니다.
아들에게 거짓말을 강요합니다.
털이 없는 야곱에게 털이 있는 에서처럼 하기 위해 옷도 갈아입히고 털도 붙입니다.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합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것으로 인해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했던 야곱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팔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하나님께 도와주셔서 그랬다고 했음)
 
이삭은 목소리는 분명히 야곱인데 에서라고 하니 그를 직접 만져봅니다.
그러나 손을 만질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야곱인줄 알지 못하고 복을 빌어줍니다.
 
나이가 들어서 눈은 흐려지지만 영적인 분별력이 사라지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나이가 들어서 영적인 분별력을 잃고 이상한 것을 따라가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줄을 잘서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영적으로도 적용이 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사람의 줄에 서 있는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되면 미혹케 하는 영들이 많아지고 더욱이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놀라운 기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신을 숭배하지 않는 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데
그 때 영적으로 분별하는 능력이 없다면, 하나님 대신 사탄을 믿고 따르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구원을 잃지 않습니다.
 
묵상
과연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으로 일을 이루는 것은 없는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없는가?
편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 거룩함과 정직을 포기하는 것은 없는가?
선의라는 목적으로 거짓말과 속이는 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은 없는가?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가?
영적인 분별력을 갖기 위해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 하나님께 구함이 있는가?
 
오늘 기도에 관한 말씀은 '위대한 사역의 열쇠' 입니다.
중심 구절은 요한복음 14:12-13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다시 떠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이요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위로와 확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떠나시더라도 제자들은 계속해서 사역을 하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역을 하게 된다는 말씀뿐만 아니라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이 또한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자신들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가?
위대한 설교를 하는 것도 그렇고
큰 기적을 행하는 것도 그렇고 (오병이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그렇고
물 위를 걷거나 풍랑을 잠잠케 하는 것도 그렇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그렇고.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이 하나님 아버지 곁이라는 사실은 (보좌 우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게 예수님께 주어지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두려워말고 믿고 기도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들으신다.
과연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어떤 것이라도 기도하면 그대로 응답되는가?
아닙니다.
무엇이든지는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과 연관시키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이 없습니다.
돈을 벌어서, 출세를 해서, 건강을 얻어서 사치스러운 좋은 차, 집,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구한 대로 다 그대로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 영혼 구원, 구제, 섬김, 사역.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이 아닙니까?
그런 것들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 응답하십니다.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고 영적인 분별력을 받아
어떤 모양이든 거짓과 속임수가 아니라 정직과 거룩과 신실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빛과 소금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